정기영 鄭淇永
- 재단법인 이사장 제4대 1949년 06월 – 1950년 06월
- 한자 鄭淇永
- 생몰 1919년
- 출생 경남 진주
- 로마자 JUNG KEE-YOUNG
업적
업적 요약
검수 전 AI 초안 · 역사 교수 검수 전 사실 확인과 서술 판단이 남아 있습니다. 아래 출처를 함께 확인해 주세요.
정기영은 창학 초기 재단 분규 한복판에서 재단법인 국민대학 제4대 이사장을 지냈다. 진주 출신으로 1944년 동경제국대학 문학부를 나와 문교부 국사관 수찬사(현 국사편찬위원회 편수관)로 일하던 인물로, 1949년 6월 이사진에 합류한 지 20여 일 만인 6월 27일 이사장에 선임됐다. 앞서 그는 재단 재산 마련에 나선 최범술 측에 재산을 낸 독지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기록돼 있다.
당시 학교는 최범술 측과 신익희 측의 대립으로 창성동과 마포동 두 곳에서 운영되는 지경이었다. 최범술은 이사장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실권을 놓지 않았고, 재단법인 국민대학의 명의를 재단법인 해인사로 바꿀 것을 그에게 종용했다. 그러나 그는 이 요구를 따르지 않았고 기부받은 재산까지 돌려주려 했다. 이에 최범술 측은 1950년 6월 12일 이사회를 열어 그를 이사장직에서 물러나게 했으며, 이를 전후로 신익희·박영희·장택상 등도 이사진에서 빠졌다.
이사장에서 물러난 뒤에도 그는 1952년 3월 재단법인 국민대학이 해인사로 목적 변경되기까지 이사로 남았다. 재임은 1년 남짓이었고, 교내 기록에도 국사관 근무 이력 외에 알려진 바가 많지 않다고 적혀 있다.
출처
- 『국민학원이 걸어온 길 1946~2019』 1장 「해공 신익희의 국민대 창학과 법인 변화 1946~1959」 — 재단법인 국민대학 제2·3대 이사회와 정기영 이사장 선임·사퇴
- 국민대학교 80년사 초안 「최범술 퇴진, 정기영 이사장 선임」·「내부 갈등」
- 연표 ev-1949-003 창성동 목조 2층 교사 신축 · ev-1950-001 학부 제1회 졸업 · ev-1952-002 재단법인 국민대학원 설립 인가
- people.json 정기영 bio_md 교내 경력(원문 출처 /chairman/foundation_fourth)
재임기 연표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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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약력
학력사항
- 1944 동경제대 문학부 졸업
경력사항
교 외
- 문교부 국사관 수찬사
교 내
- 1949.06 - 1950.06 재단법인 국민학원 이사장
- 1949.06 - 1952.03 재단법인 국민학원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