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영 (知英) 이용조 李龍祚
- 재단법인 이사장 제5대 1950년 06월 – 1952년 03월
- 한자 李龍祚
- 생몰 1899년
- 출생 경남 합천
- 로마자 LEE YONG-JO
업적
업적 요약
검수 전 AI 초안 · 역사 교수 검수 전 사실 확인과 서술 판단이 남아 있습니다. 아래 출처를 함께 확인해 주세요.
이용조는 1950년 6월부터 1952년 3월까지 재단법인 국민대학의 대표이사를 지냈다. 1930년 7월 김법린 등과 함께 만당(卍黨)을 조직한 불교계 인사로, 최범술의 일본 도쿄 릿쇼중학교 1년 후배였다. 1947년 10월 최범술 재단이 출범할 때 이사로 이름을 올린 뒤 1950년까지 이사진에 남아 있었다.
1950년 6월 12일 최범술 측이 이사회를 열어 정기영을 이사장직에서 사퇴시키면서 그가 대표이사에 선임됐다. 이때 신익희를 비롯한 10여 명이 이사진에서 제외됐고, 조선불교중앙총무원장 김법린, 해인사 주지 임환경, 불교지사 사장 장도환 등이 남았으며 해인사 강사 강욱재와 감무 최성관이 새로 들어왔다. 국민대학 측과 재단이 사실상 갈라선 상태에서 꾸려진 이사회였다.
그의 재임기는 6·25전쟁과 겹쳐, 학교는 1950년 12월 부산에 임시 교사를 마련했다. 1952년 3월 24일 재단법인 국민대학이 재단법인 해인사로 목적변경 인가를 받아 해인대학 설립으로 향하면서 대표이사직도 끝났고, 학교는 같은 날 인가된 재단법인 국민대학원으로 넘어갔다. 그는 1953년부터 해인대학 학장과 이사장을 맡았다.
출처
- 자료집 「국민학원이 걸어온 길 1946-2019」 1장 — 재단법인 국민대학 제2·3대 이사회 구성표와 대표이사 교체 경위
- 자료집 「국민학원이 걸어온 길 1946-2019」 1장 — 재단법인 국민대학관 제2대 이사회(이용조 이사 1947.10.16~)
- 국민대학교 80년사 초안 Ⅰ-1장 「학교법인은 정기영 체제에서 이용조 대표이사 체제로 변경」
- 자료집 「사진으로 담은 국민대학교 70년 뒷 부속자료」 연표 — 이용조(1950.6~1952.3), 1950.06 이용조 이사장 취임
- 연표 ev-1950-002 6·25전쟁으로 부산에 임시 교사 마련 · ev-1952-002 재단법인 국민대학원 설립 인가
재임기 연표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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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약력
학력사항
- 1925.03 일본 동경 릿쇼(立正) 중학교 졸업
- 1929.03 일본동경 의학전문학교 졸업
경력사항
교 외
- 1930.07 김법린 등과 만당(卍黨) 조직
- 1932.10 조선총독부 외사과 촉탁의관(만주국 길림)
- 1947.04 경성제국대학 부속의원 의사
- 1934.05 만주 길림병원장
- 1946.03 서울자성의원 원장
- 1953 - 1962 해인대학장·이사장 임명
교 내
- 1947.10 - 1952.03 재단법인 국민학원 이사
- 1950.06 - 1952.03 재단법인 국민학원 대표이사(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