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민대 80장면 044

건물로 본 학교 역사

요약

종합대학승격과 명문사학으로의 웅비를 꿈꾸며 창성동에서 정릉동으로 캠퍼스를 옮겨온 1971년 9월 당시의 국민대학교 건물은, 제1호관인 현재의 본부관이 유일한 것이었다.

1.건물면전의 변화, 2. 1970년대 초 학교 전경, 3. 1980년대 학교 전경
1.건물면전의 변화, 2. 1970년대 초 학교 전경, 3. 1980년대 학교 전경

종합대학승격과 명문사학으로의 웅비를 꿈꾸며 창성동에서 정릉동으로 캠퍼스를 옮겨온 1971년 9월 당시의 국민대학교 건물은, 제1호관인 현재의 본부관이 유일한 것이었다.

본부관은 1969년부터 공사를 시작해 약 2년 반만인 1971년 9월 9일 학교 이전에 맞춰 준공했다. 총 9천 5백여만원의 공사비가 소요된 총면적 4,962㎡의 이 건물은 그 당시로서는 초현대식 철근 콘크리트 5층 건물이었다. 제1호관이 준공되던 날 제2호관인 현재의 북악관을 기공했다. 1974년 5월 24일 준공한 15층 높이의 이 건물은 총면적 22,670㎡에 총4억 2천여만의 공사비가 소요되었다. 당시의 대학건물로서는 초고층ㆍ초현대식 건물이었던 제2호관은 본격적인 정릉동 시대의 개막을 알리며 이후 오랜 동안 학교의 메인 건물로서 기능했다.

1976년 3월 공학관 준공을 시작으로, 78년 5월에는 학생회관이, 1979년 9월에는 중앙도서관(현 조형관)이 개관하였다. 또한 이듬해인 1980년 11월에 체육관이 완공되고 12월에는 민속관이 준공됨으로써, 같은 해 실현된 종합대학 승격과 함께 그에 걸맞은 규모의 건물 면적을 보유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어 1983년 8월 제3호관(현 과학관)의 개관으로 건물확장이 일단락되었다.

1990년대 들어와 급증하는 학생 수에 대응하기 위해 다시 건물 증축이 시작되었다. 1993년 6월 성곡도서관이 신축되고, 1995년에는 조형관이 증ㆍ개축되었으며, 본부관ㆍ공학관ㆍ학생회관의 증축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1997년에는 공학관 별관 및 영빈관이 개관했으며, 1999년에는 국제교육관이, 2001년에는 예술관이 각각 완공되었다. 또한 2003년 3월 지방 학생들의 오랜 꿈이었던 생활관(기숙사)이 문을 열었다.

이상 본 바와 같이 정릉동으로 이전한 이래 국민대학교의 건물은 꾸준히 증가해 왔다. 이는 학생정원 수의 증가 등과 함께 학교의 외적 성장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양적 성장이 곧 질적 성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건물 보유면적 중 교육기본시설로 산정되는 건물 보유율의 변화를 통해 엿볼 수 있다. 1970년대 줄곧 100%를 밑돌던 면적 보유율은 1981년을 기점으로 100%를 넘어서 83년의 160%를 정점으로 87년에는 155%를 상회했다. 그러나 1988년부터 100%대가 깨지기 시작해 1998년에는 68%대로 추락했다. 2001년부터 70%를 회복하며 다시 증가하기 시작해 2003년 현재 86%로 100%대 회복을 위해 나아가고 있는 추세에 있다. 질적 성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양적 성장의 중요한 부분인 건물 면적의 확장이 아직도 국민대학교는 절실하다고 할 수 있다.

김동명(정치외교학과)교수 / ≪국민대신문≫ 2003-10-13

사료 사진

4.예술관 준공(2001.6), 5. 국제교육관 준공(1999.8), 6. 성곡도서관(1993.6), 7. 종합복지관 준공(2005.9), 8. 7화관 준공(2004.7), 9. 형설관 개관(1995.11), 10. 2016년 현재 국민대학교 전경, 11. 국민대학교 정릉캠퍼스 약도
4.예술관 준공(2001.6), 5. 국제교육관 준공(1999.8), 6. 성곡도서관(1993.6), 7. 종합복지관 준공(2005.9), 8. 7화관 준공(2004.7), 9. 형설관 개관(1995.11), 10. 2016년 현재 국민대학교 전경, 11. 국민대학교 정릉캠퍼스 약도
원문 보기 — 이 서술의 근거

현행 사이버역사관 원문: https://kmuhistory.kookmin.ac.kr/history/1993_2003/view

이 글은 깊이보기 「건물로 본 학교 역사」 페이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사료 사진 크게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