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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 80장면 046

전임교원 인원으로 본 학교 역사

요약

개교 직후인 1947년 국민대학교의 전임교원 인원은 15명이었다. 학장 겸 교수였던 해공 신익희 선생을 비롯해 대부분이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었다.

1. 1996년 6월 전체 교수회의의 장면, 2. 2004년 전체교수회의의 장면, 3. 2008년 4월 전체교수회의 장면, 4. 전임교원 인원의 변화
1. 1996년 6월 전체 교수회의의 장면, 2. 2004년 전체교수회의의 장면, 3. 2008년 4월 전체교수회의 장면, 4. 전임교원 인원의 변화

개교 직후인 1947년 국민대학교의 전임교원 인원은 15명이었다. 학장 겸 교수였던 해공 신익희 선생을 비롯해 대부분이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었다. 5명이 국내에서 경성제대(京城帝大)를 졸업하였고, 나머지는 도쿄제대(東京帝大), 교토제대(京都帝大), 그리고 와세다대학 등에서 수학한 일본 유학파였다.

이후 자세한 전임교원 인원의 변화는 알 수 없으나, 1961년에는 25명, 그리고 1971년에는 26명임이 확인된다. 정치적 격동기였던 1960년대는 정부의 불안정한 대학 정책 등으로 말미암아 전임교원 인원에 큰 변화가 없었던 것이다.

1970년대의 전임교원의 전체 인원을 알 수 있는 데이터는 없으나 다행히 신규 임용인원에 관한 자료는 입수할 수 있으므로 그 대강의 변화를 a파악할 수 있다. 1972년에 16명을 시작으로 73년 9명, 74년 13명, 75년 16명, 76년 25명, 77년 11명, 78년 6명, 79년 9명, 80년 19명 등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그 결과 1981년에는 전임 교원 인원이 116명에 이르게 되었다. 1970년대에 들어서 특히 71년 창성동에서 현재의 정릉동으로 캠퍼스를 이전하면서 학생 입학 정원의 비약적인 증가와 더불어 전임교원 인원도 크게 늘어났던 것이다.

1981년 종합대학 승격 이후 전임교원 인원은 계속해서 증가해 1986년 150명을 넘어섰으며 1990년대에 들어와서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1991년 176명으로, 1994년에는 205명으로 200명대를 돌파하였다. 이어 1996년에는 241명으로 급증하고, 1998년 261명, 2000년 283명을 지나 2002년에는 307명으로 300명 시대를 맞이하였다.

전임교원 인원의 증가는 학생 입학정원 및 건물 면적의 증가 등과 함께 학교의 양적 성장을 잘 보여준다. 1970년대 이후 국민대학교의 전임교원 인원은 꾸준히 증가해 왔다. 그러나 이 역시 곧 학교의 질적 성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질적 발전 평가를 가늠하는 전임교원 1인당 재학생 수의 경우 국민대학교는 아직 높은 수치를 나타내고 있다. 1998년 제2학기의 경우 37.40명, 1999년 제2학기는 40.74명, 2000년 제2학기는 41.39, 2003년 제1학기 현재는 39.34로 여전히 40명대를 육박하고 있다. 이는 전국 평균 33.0(2001년도)을 훨씬 웃도는 수치이며, 국내 유수 대학의 2배에 가까운 수준이다. 최근 외부 기관에서 실시하는 대학평가에서 국민대학교가 구성원들이 기대한 만큼 평가받지 못하는 원인의 상당 부분이 여기에 있다. 현재 국민대학교는 급속한 양적 팽창에 다른 질적 발전을 달성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는 우수한 전임교원 인원의 조속한 증가에 의해 앞당겨질 것이다.

김동명(정치외교학과)교수 / ≪국민대신문≫ 2013-11-10

사료 사진

5. 교수 현황(2016.4 현재), 6. 2013년 9월 전체 교수회의 장면
5. 교수 현황(2016.4 현재), 6. 2013년 9월 전체 교수회의 장면
원문 보기 — 이 서술의 근거

현행 사이버역사관 원문: https://kmuhistory.kookmin.ac.kr/history/1993_2003/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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