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 80장면 043
입학정원으로 본 학교 역사
요약
1946년 9월, 임시정부요인들이 설립한 해방 후 최초의 사립대학인 국민대학교가 창성동에서 처음 둥지를 틀었을 때의 입학정원은, 법률학과와 경제학과에 각각 50명씩 총 100명이었다.
1946년 9월, 임시정부요인들이 설립한 해방 후 최초의 사립대학인 국민대학교가 창성동에서 처음 둥지를 틀었을 때의 입학정원은, 법률학과와 경제학과에 각각 50명씩 총 100명이었다.
2년 후인 48년에는 정치학과가 신설되어 입학정원이 150명으로 늘어났으나, 이 정원은 1957년까지 10여 년간 제자리걸음을 하였다. 안정된 재단을 확보하지 못해 재단선정을 둘러싸고 벌어진 학내 분규가 성장을 가로막는 가장 큰 요인이었다.
1957년 285명으로 입학정원이 증가하기 시작해 다음해는 365명으로 늘어났으나, 1962년에는 14년 전의 정원인 150명으로 다시 급감하였다. 바로 전해인 61년 5·16쿠데타로 집권한 군사정권이 일방적이고 획일적인 대학정비에 나섰기 때문이었다. 이후 64년에 265명, 67년에 445명, 68년에 475명으로 조금씩 회복세를 보이는 가운데 기존의 정원을 겨우 유지하는 선에서 60년대를 마감했다.
1970년대는 약진의 시기였다.
1972년 620명으로의 증원을 시작으로 78년에 1,090명, 79년에는 1,210명으로 점증해 마침내 1,000명 시대를 열었다. 이 기간은 71년 9월 창성동에서 지금의 정릉동으로 캠퍼스가 이전한 이후 안정된 재단의 지원 아래 종합대학으로의 승격을 위해 꾸준히 준비했던 시기이다.
1980년 1,500명 시대를 열며 종합대학승격인가를 받고, 81년 종합대학의 첫 새내기 1,530명을 맞으며 87년까지 중형종합대학을 지향하게 된다. 그러나 중형대학이 안고 있는 여러 한계를 극복하고자 다시 입학정원증원에 나서 1988년 1,760명, 1992년 1,850명, 93년 1,910명으로 점증하다가 94년에는 2, 190명으로 2천명 시대를 힘차게 열며 대형종합대학으로의 도약을 꾀하게 된다.
다음 해에는 2,510명으로 입학정원이 늘어나 개교 50년 만에 무려 25배의 성장을 이루고, 1998년에는 3,050명으로 3,000명 시대가 개막되어 현재 서울 캠퍼스 편제 정원 기준 6위에 랭크되었다. 입학정원의 증가는 주로 양적인 성장을 보여주는 수치이며, 반드시 질적 발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급격한 입학정원에 따른 연구·교육 시설을 비롯한 공간의 부족 등이 그 예이다.
그러나 양적 성장이 질적 발전의 토대가 될 수 있다는 것 역시 확실하다.
그 동안 국민대학교는 양적 성장에 걸맞게 질적 수준을 향상시키는 노력을 계속해 왔으며 최근 그 성과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단순한 외형적 성장을 넘어 내실 있는 발전을 이루는 것이 오늘날 국민대학교에 주어진 과제인 것이다.
김동명(정치외교학과)교수 / ≪국민대신문≫ 2003-09-01
사료 사진
원문 보기 — 이 서술의 근거
현행 사이버역사관 원문: https://kmuhistory.kookmin.ac.kr/history/1993_2003/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