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 80장면 001
임시정부가 세운 '국립대학'
요약
국민대학교가 ‘해방 후 최초의 민족사학’이라는 사실은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국민대학의 역사성을 온전히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국민대학교가 ‘해방 후 최초의 민족사학’이라는 사실은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국민대학의 역사성을 온전히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국민대학이 임시정부의 ‘대학’으로 출발한 사실을 모르거나, 간과해 왔다. 국민대학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이전인 1946년 미군정 시기에 건립되었다. 해방 정국의 격랑에서 탄생한 국민대학은 나라가 없던 처지에서 ‘사립’의 형태를 띠었지만, 여느 ‘사학(私學)’과는 다른 것이었다. 국민대학 건학은 해공(海公)을 비롯한 임시정부 인사들이 환국하기 전인 중경(重慶) 임시정부 시절부터 추진되었다. 임시정부는 일제 패망이 예견되는 상황에서, 독립 후 새국가 건설을 위한 건국강령을 마련했고, 교육은 정치·경제와 함께 강령의 골간을 이뤘다. 교육정책에는 대학을 세워 새국가 건설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한다는 원대한 뜻이 담겨져 있었다.
해방 후 임시정부는 미군정의 방해로 간판을 내걸 처지가 못 되었다. 그렇지만 백범(白凡)을 비롯한 임시정부 인사들은 독립운동의 연장선상에서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해공이 환국 직후 국민대학 건립을 추진해 갔던 것은 임시정부 교육정책을 실행한 것에 다름 아니었다. 국민대학 건학은 1946년 1월 초 백범의 숙소인 경교장(京橋莊)에서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 동년 3월 국민대학설립기성회 발족을 통해 구체화되었다. 설립기성회 진용도 임시정부 지도자들로 구성되었다. 고문에는 임시정부 주석 김구(金九), 부주석 김규식(金奎植), 명예회장에는 임시정부 외교부장 조소앙(趙素昻), 회장에는 내무부장 신익희(申翼熙)가 선임되면서, 임시정부 주석단이 국민대학기성회를 맡고 나선 것이다. 그리고 미군정이 조선총독부의 경성제국대학을 모체로 소위 ‘국립대학’을 세우려 하자, 임시정부 인사들은 5월 18일 설립기성회의 발족 사실을 언론지상에 널리 알리며, 건학운동에 박차를 가하였다.
이때 주목할 것은 동아일보가 국민대학기성회의 발족을 ‘국립대학설립준비’라고 보도한 사실이다. ‘국립대학’이라는 보도는 국민대학 건학이 내함한 역사 진실을 정확하게 꿰뚫은 것이었다.
장석흥(국사학과) 교수 / ≪국민대학보≫ 2002-09-02
원문 보기 — 이 서술의 근거
현행 사이버역사관 원문: https://kmuhistory.kookmin.ac.kr/history/1946_1958/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