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민대 80장면 032

국민대 신문 60년 그 때 그 시절3

요약

5월의 여왕 부제의 1973년 5월 30일자 신문(제156호)

국민여왕 대관식 장면(1973.5)
국민여왕 대관식 장면(1973.5)

5월의 여왕 부제의 1973년 5월 30일자 신문(제156호)

최초의 메이퀸(May Queen)은 1908년 5월 31일 이화여대(당시 이화학당)에서 탄생했다. 메이퀸은 ‘여대생으로는 최고의 영예’였을 뿐만 아니라 축제의 꽃이었고 아름다움과 지성을 상징하는 대명사였다. 과마다 퀸을 뽑아 경합을 하여 메이퀸을 뽑았다. 대학 메이퀸의 영예는 굉장했다. 학생들이 “당신을 여왕으로 모십니다”라고 합창하면서 여왕에게 화관을 씌워주는 엄숙한 행사가 끝나면 일간지에까지 사진이 실려 유명세를 치렀다. 메이퀸은 점차 학교 대표 미인 선발대회로 퍼져 각 학교는 앞 다투어 성대하게 여왕 대관식을 치렀다.

우리학교는 1966년에 1대 국민여왕이 탄생했다. 축제가 4월 또는 5월에 열렸기 때문에 메이퀸보다는 ‘국민여왕’이라는 호칭을 썼다. 여왕 대관식에는 여학생들이 여왕을 위해 강강수월래 등의 축하무용 퍼레이드를 준비했다. 1970년 5월 5일자 신문에 ‘아리따운 본교 여학생들이 강강수월래가 있기 전 국민여왕을 향해 정렬하고 있는’ 사진이 실려 있다. 우리학교의 메이퀸 선발조건은 B학점(3.0) 이상, 키 160cm이상, 품행이 우수하고 용모가 단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1973년 5월 30일 국민대신문에는 “8대 국민여왕으로 뽑힌 송인순 양이 전년도 여왕으로부터 여왕관을 물려받았다”는 기사가 보도됐다. 8대 국민여왕으로 뽑힌 송인순 양은 당시 의상학과 4학년이었다. 신문에는 그녀의 사진과 함께 인터뷰가 실렸다. 인터뷰에는 그녀의 가족관계, 출신 고교, 취미, 특기, 결혼상대자의 조건 등에 대하여 나와 있다. 신문보도에 따르면 송양은 장래 배우자 조건으로 건강, 성실, 학벌, 가문, 용모, 경제력 순으로 제시했는데 요즘 20대들이 경제력을 우선시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 인상적이다.

국민여왕 대관식은 74년까지 이어져오다가 75년에 학도호국단이 결성돼 체육 부분에 역점을 두는 축제로 바뀌면서 국민여왕 대관식을 비롯한 문화·예술 분야의 행사가 제외됐다. 다음 해에는 축제가 아예 ‘춘계 북악 체전’으로 변경돼 국민여왕은 설 자리를 잃었다.

이화여대에서는 낭비라는 지적과 함께 성의 상품화와 평등권 위배로 논란이 되어 과에서 퀸을 뽑아 올리지 않으면서 78년에 메이퀸이 폐지됐다. 이제 메이퀸은 한때 유행했던 대학문화이기 보다는 잊혀져가는 축제의 낭만으로 기억되고 있는 듯하다.

강혜령 기자 / ≪국민대신문≫ 2008-05-06

사료 사진

1. 4월의 여왕 행사 모습(1970.4), 2. 8대 국민여왕 송인순(1973.5)
1. 4월의 여왕 행사 모습(1970.4), 2. 8대 국민여왕 송인순(1973.5)
원문 보기 — 이 서술의 근거

현행 사이버역사관 원문: https://kmuhistory.kookmin.ac.kr/history/1971_1980/view

이 글은 깊이보기 「국민대 신문 60년 그 때 그 시절3」 페이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사료 사진 크게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