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릉캠퍼스 이전 후 첫 입학식에 모인 신입생과 구성원

EXHIBITION 03 · 1971—1980

북악 아래,
두 번째 창학

창성동을 떠나 정릉으로. 비어 있던 북악 자락에 건물을 세우고 길을 내며, 국민대학은 종합대학의 꿈을 담을 새 캠퍼스를 만들었습니다.

정릉캠퍼스로 들어가기

정릉캠퍼스 이전 후 첫 입학식 · 1972. 3

국민대학 정릉 신축 교사 공사 가공식

ACT 01 · THE FIRST CUT · 1969—1971

좁은 창성동을 떠나
북악에 첫 삽을 뜨다

종합대학을 향한 계획은 정릉동 산자락의 6만여 평 교지를 확보하며 현실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1969년 가공식은 건물 한 채의 공사가 아니라 대학의 미래 규모를 선언하는 자리였습니다.

길도 건물도 충분하지 않았던 터에 구성원들은 캠퍼스의 선을 그었습니다. 창학의 뜻을 새 공간에 옮겨 심는 ‘제2의 창학’이 시작된 순간입니다.

새 교사와 구성원의 희망 더 읽기 →

다음 장면 · 설계도 위의 선은 1971년 마침내 첫 건물이 됩니다.

국민대학 신축 교사 공사 가공식 · 1969. 7

국민대학 제1호관 준공식

ACT 02 · THE FIRST BUILDING · 1971. 09

첫 건물이 서자
캠퍼스가 시작되었다

1971년 9월 제1호관이 문을 열었습니다. 아직 주변은 흙과 공사장이었지만, 강의가 시작되자 비로소 정릉은 지도가 아닌 살아 있는 캠퍼스가 되었습니다.

같은 날 2호관 기공으로 다음 건물의 약속도 이어졌습니다. 하나의 완공이 곧 다음 공정의 시작이 되는 속도 속에서 대학은 북악 자락을 넓혀 갔습니다.

창성동에서 정릉동으로 더 읽기 →

다음 장면 · 다음 봄, 학생들이 새 교정으로 향하는 길이 열립니다.

국민대학 제1호관 준공식 · 1971. 9

1972년 정릉캠퍼스로 통학하는 학생들

ACT 03 · THE ROAD TO CAMPUS · 1972

새 교정으로 향하는
매일의 길

1972년, 정릉 이전 뒤 첫 입학식이 열렸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길을 걷는 학생들의 발걸음이 캠퍼스의 동선을 만들었습니다.

창성동의 밀집된 도시 풍경과 달리 북악은 하늘과 산이 가까웠습니다. 낯선 통학길은 곧 국민대학 학생이라면 누구나 기억하는 새로운 일상이 되었습니다.

다음 장면 · 새 공간에는 새 이름과 새 문화가 필요했습니다.

정릉캠퍼스로 통학하는 학생들 · 1972

1972년 정릉캠퍼스에서 열린 북악제

ACT 04 · A NEW NAME · 1972. 05

국민축전은
북악제가 되었다

정릉 이전 뒤 처음 열린 축제에서 ‘국민축전’은 ‘북악제’라는 새 이름을 얻었습니다. 장소의 변화가 공동체의 언어까지 바꾼 것입니다.

학생들은 운동장과 계단, 강의동 사이를 공연과 토론의 무대로 바꾸었습니다. 북악은 단순한 뒷산이 아니라 대학의 또 다른 이름이자 구성원을 잇는 정체성이 되었습니다.

우리 학교 축제의 변천 더 읽기 →

다음 장면 · 함께 만든 공간에는 세대와 세대를 잇는 표식도 생겨났습니다.

정릉 이전 후 첫 축제, 제24회 북악제 · 1972. 5

1970년대 후반 정릉캠퍼스 시계탑과 민주광장

ACT 05 · A GIFT OF TIME · 1974

졸업생이 세운 시계탑,
함께 만든 민주광장

제25회 졸업생들은 후배들이 시간을 바라볼 수 있도록 시계탑을 기증했습니다. 1974년 준공된 탑은 수업의 시작과 끝을 알리며 캠퍼스의 중심을 잡았습니다.

그 앞의 광장은 만남과 토론, 때로는 시대에 대한 발언이 모이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건물 사이의 빈 공간이 공동체의 기억을 품는 ‘민주광장’으로 자라났습니다.

다음 장면 · 캠퍼스의 중심이 생기자 학문의 영역도 더 넓어졌습니다.

졸업생이 기증한 시계탑과 민주광장 · 1970년대 후반

1976년 준공된 국민대학 공학관

ACT 06 · ACADEMIC EXPANSION · 1976

대학원과 공학관,
꿈의 규모가 넓어지다

1976년 대학원이 설치되고 공학관이 준공되면서 교육은 학부를 넘어 연구와 전문 영역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정릉캠퍼스가 품어야 할 지식의 층위가 한 단계 깊어졌습니다.

교정에는 강의동과 연구 공간이 잇따라 들어섰고, 국민대학 요람과 입학안내에는 커져 가는 학문 지도가 기록되었습니다. 종합대학은 더 이상 먼 구호가 아니었습니다.

제2창학의 보금자리 더 읽기 →

다음 장면 · 개교 30주년, 모두의 시선은 이제 종합대학을 향합니다.

공학관 준공 · 1976. 3

개교 30주년을 기념해 정문에서 풍선을 띄우는 장면

ACT 07 · A DREAM TAKES FLIGHT · 1976—1980

30주년의 풍선이
종합대학의 꿈을 띄우다

개교 30주년, 정문에서 수천 개의 풍선이 북악의 하늘로 올랐습니다. 그것은 새 캠퍼스를 일군 구성원들이 더 큰 대학을 상상하는 집단적 장면이었습니다.

1970년대의 끝에서 국민대학은 학과와 시설, 대학원 체계를 갖추며 종합대학 승격을 준비했습니다. 1981년, 정릉에서 시작된 두 번째 창학은 마침내 ‘국민대학교’라는 새 이름으로 완성됩니다.

‘북악’이라는 이름의 기억 더 읽기 →

전시 문안 기준: 개교 80주년 사진전시 Illustrator 원고와 국민대학교 사이버역사관 「정릉 캠퍼스 시대 개막」. 사진 캡션과 연도는 원고 표기를 따랐습니다.

개교 30주년, 정문에서 수천 개의 풍선을 띄우다 · 1976.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