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 04 · 1981—1992
하나의 대학에서
종합대학교로
1981년 종합대학 승격. 더 커진 이름에 걸맞은 교육·연구 체계를 세우고, 민주화의 목소리와 캠퍼스 문화를 함께 키운 12년의 시간입니다.
종합대학의 시대로 들어가기북악 자락에 자리 잡은 국민대학교 전경 · 1980년대
ACT 01 · THE PROMOTION · 1981
현판의 이름이
바뀌던 날
1981년 국민대학은 종합대학인 국민대학교로 승격했습니다. 단과대학과 대학원이 하나의 체계 안에서 움직이기 시작했고, 첫 입학식에 모인 신입생들은 새로운 교명의 첫 세대가 되었습니다.
승격은 오랫동안 이어 온 열망의 결실이면서 더 무거운 출발선이었습니다. 커진 외형을 교육과 연구의 내실로 채워야 한다는 과제가 대학 앞에 놓였습니다.
종합대학의 역사적 출범 더 읽기 →다음 장면 · 새 이름을 지속 가능한 대학으로 만드는 일은 긴 계획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종합대학 승격 후 첫 입학식 · 1981. 3
ACT 02 · THE BLUEPRINT · 1981—1991
성장은 계획이 될 때
체계가 되었다
종합대학 승격 뒤 국민대학교는 단계별 발전 계획을 세워 학과와 대학원, 시설과 교원 체계를 함께 정비했습니다. 양적인 확대가 교육의 질을 앞지르지 않도록 ‘견실한 중형대학’이라는 방향을 택했습니다.
3호관과 형설재 등 새로운 공간이 잇따라 문을 열고, 학문 분야별 기반이 자리 잡았습니다. 캠퍼스의 외곽선은 곧 대학의 교육 구조를 보여 주는 설계도가 되었습니다.
1980년대 캠퍼스의 변화 더 읽기 →다음 장면 · 건물의 높이만큼 연구의 깊이도 자라야 했습니다.
3호관(현 과학관) 개관 · 1983. 8
ACT 03 · THE FIRST DOCTORATE · 1983
첫 박사학위,
연구의 깊이를 더하다
1983년 제1호 박사학위가 배출되었습니다. 학부 교육을 넘어 스스로 지식을 생산하는 대학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 주는 상징적인 결실이었습니다.
대학원과 연구 기반의 확장은 강의실의 질문을 논문과 실험으로 이어 주었습니다. 종합대학의 ‘종합’은 학과 수가 아니라 서로 다른 지식이 깊이를 갖고 만나는 구조로 완성되었습니다.
다음 장면 · 미래를 연구하는 동시에, 대학은 자신이 이어받은 정신과 문화를 돌아보았습니다.
국민대학교 제1호 박사학위 논문 · 1983
ACT 04 · ROOTS AND HERITAGE · 1981—1983
전통을 옮겨 심고,
창학의 정신을 세우다
1981년 명원민속관이 문을 열어 생활문화의 기억을 캠퍼스 안에 품었습니다. 현대적 종합대학을 세우는 과정에서 우리 문화의 뿌리를 함께 보존하려는 선택이었습니다.
1983년에는 해공 신익희 동상이 세워졌습니다. 전통의 공간과 창학자의 형상은 빠르게 변하는 대학 한가운데서 ‘어디에서 시작했는가’를 묻는 두 개의 기준점이 되었습니다.
명원민속관과 한국 문화 더 읽기 →다음 장면 · 정신과 전통은 학생들이 직접 만드는 문화 속에서 새로운 표정을 얻었습니다.
명원민속관 개관식 · 1981. 10
ACT 05 · THE FACE OF BUKAK · 1981—1989
경기장과 무대에서
북악의 표정이 생겼다
축구 정기전과 농구대회, 북악체전은 캠퍼스를 함성으로 채웠습니다. 1985년 시작된 북악응원 ‘넋두리’는 학생들이 몸과 목소리로 공동체의 에너지를 표현한 무대였습니다.
1989년 노천극장이 세워지면서 공연과 집회의 공간도 넓어졌습니다. 강의와 연구로 짜인 대학의 낮은 스포츠와 예술, 축제가 만드는 또 다른 시간으로 이어졌습니다.
1980년대 북악인의 생활 더 읽기 →다음 장면 · 그러나 그 목소리는 축제의 함성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제1회 북악응원 ‘넋두리’ 공연 · 1985
ACT 06 · A CAMPUS SPEAKS · 1980년대
캠퍼스도 시대의 질문을
피하지 않았다
1980년대의 대학은 민주주의를 둘러싼 사회의 갈등과 분리될 수 없었습니다. 학생들은 민주광장과 거리에서 자유, 정의, 대학의 사회적 책임을 질문했습니다.
1987년의 민주화 열기와 1989년 김윤기 열사의 죽음은 북악 공동체에 깊은 흔적을 남겼습니다. 대학의 성장은 시설뿐 아니라 질문하고 발언할 수 있는 시민적 공간을 넓히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1987년 북악인의 생각 더 읽기 →다음 장면 · 치열한 시대를 지나 캠퍼스는 더 넓고 단단한 다음 단계로 향했습니다.
캠퍼스의 민주화운동 · 1980년대
ACT 07 · SOLID GROWTH · 1989—1992
넓어진 캠퍼스,
내실 있는 중형대학
1980년대 말의 캠퍼스에는 강의동과 연구 공간, 광장과 노천극장이 하나의 생활권을 이루었습니다. 종합대학 승격 이후의 계획은 눈에 보이는 대학의 풍경으로 완성되어 갔습니다.
1990년대 초 국민대학교는 견실한 중형대학의 기반을 갖추었습니다. 그리고 세계화와 정보화가 밀려오는 다음 시대, 더 큰 규모와 새로운 전문 분야를 품을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종합대학 승격의 의미 더 읽기 →전시 문안 기준: 개교 80주년 사진전시 Illustrator 원고와 국민대학교 사이버역사관 「종합대학 승격과 중형대학 지향」. 사진 캡션과 연도는 원고 표기를 따랐습니다.
노천극장 건립, 현 경상관·예술관 위치 · 198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