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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 80장면 042

[기자의 눈] 82년과 84년에서 본 국민대의 해답

요약

1980년대는 민영방송이었던 TBC가 언론 통폐합을 통해 KBS에 흡수되면서 공중파로는 KBS와 MBC만이 유일하던 시절이었다. 이 때 컬러TV가 통용되면서 공중파는 대중의 이목을 더욱 끌었으며, 기자나 아나운서는 선망의 대상이 됐다.

김석진(정외·77학번)동문과 문철호(한문·78학번)동문
김석진(정외·77학번)동문과 문철호(한문·78학번)동문

1980년대는 민영방송이었던 TBC가 언론 통폐합을 통해 KBS에 흡수되면서 공중파로는 KBS와 MBC만이 유일하던 시절이었다. 이 때 컬러TV가 통용되면서 공중파는 대중의 이목을 더욱 끌었으며, 기자나 아나운서는 선망의 대상이 됐다. 당시에도 방송사 공채는 경쟁이 치열해 입사가 쉽지 않았다. 공채 시험의 난이도는 악명이 높았으며 합격을 위해선 수백 대일에 달하는 경쟁을 뚫어야했다. 그러던 1982년, 우리학교에서 MBC 아나운서 공채 합격자가 탄생했다. 82년 합격한 故 송인득(경제·78학번)동문은 MBC 스포츠 시청률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이후 우리학교는 MBC 입사의 물꼬가 트여, 84년 공채에서는 기자 2명과 아나운서 1명이 배출됐다. 국민대 개교 이래, 언론사 공채에서 이 같은 성과를 낸 사례는 드물다. 84년 기자 합격을 거머쥔 김석진(정외·77학번)동문과 문철호(한문·78학번)동문은 각각 모스크바 특파원, 보도국장을 역임했다. 그리고 같은 해 아나운서에 합격한 동문은 바로 현재 대중적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손석희(국문·76학번)동문이었다. 어릴 적부터 기자가 되기를 열망했던 김석진 동문은 학창 시절을 도서관에 바친 끝에, 졸업하던 해 2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의 영광을 얻었다. 또한 손석희 동문은 모 일간지 판매국에서 일하면서 직장 근처 여관에다 거처를 잡고 입사 준비를 병행하는 등 노력을 다해 합격을 이뤘다.

이들이 공중파 입사에 성공했던 80년대 초중반, 우리학교 위상은 그리 높지 않았다. 학벌과 인맥에 기대어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주어진 여건에 개의치 않고 오로지 꿈을 향해 전진한 우리의 선배들은 모두 꿈을 성취했다. 김 동문은 과거 <국민대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어려운 일을 기피하려고만 하지 말고 뭐든 남들보다 배로 노력해야 한다”며 우리학교 학생들에게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바 있다. 이처럼 ‘노력’을 강조하는 김 동문의 말은 비단 우리학교 재학생뿐만 아니라 우리학교의 발전방향 자체에 대한 명쾌한 해답이다.

우리학교는 자동차·디자인 등을 특화시키며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뤄냈으나 명문대로 가는 길목에서 오랜 기간 머물러 있다는 말을 듣고 있다. ‘중앙일보 대학 평가’에서는 2년째 30위권을 맴돌고 있다. 학교의 고질적인 공간 부족 문제도 커다란 과제다. 이와 같이 당면한 과제를 앞에 두고도 ‘고강도’가 아닌 ‘설렁설렁’ 노력을 한다면 이도저도 아니게 될 것이 분명하다.

우리학교는 녹록하지 않은 환경에서 혼신의 노력으로 언론인이 된 동문의 모습을 되새기며 열심히 뛰어야한다.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의 오명은 벗어났으나 우리학교의 ‘발전’은 이제 시작이다. 학령인구의 급속한 감소로 인해 당장 2018년부터 대학 입학 정원이 고교 졸업자수를 초과한다. 이로 인해 벌어질 고등교육계의 생존 경쟁에 우리대학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

학우들도 7~80년대와 비교해봤을 때 학교의 여건이 크게 나아졌다는 것을 주지하고 용감히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야 한다. 막연하게 환경 탓만 하다 주저앉을 수는 없다. 우리학교 선배들이 열정과 노력으로 이뤄냈던 꿈을 상기하며 국민인도, 우리대학도 미래를 향해 끊임없는 노력과 도전을 펼쳐야 할 것이다.

고동완 기자 / ≪국민대신문≫ 2013-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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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사이버역사관 원문: https://kmuhistory.kookmin.ac.kr/history/1981_1992/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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