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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 80장면 035

종합대학의 역사적 출범

요약

개교 이래 30여 성상(星霜), 드디어 우리는 81년의 3ㆍ1절을 기점으로 우리의 숙원이던 종합대학의 역사적 출범을 맞이했다. 오늘부터 그 새로운 장을 기록하기에 이른다.

1. 1960년대 국민대 학생들이 종합대학 승격의 염원을 담은 국민만평(≪국민대학보≫ 1967.11.30), 2. '국민대학'현판을 떼고 '국민대학교'현판을 새롭게 거는 장면(1981.3)
1. 1960년대 국민대 학생들이 종합대학 승격의 염원을 담은 국민만평(≪국민대학보≫ 1967.11.30), 2. '국민대학'현판을 떼고 '국민대학교'현판을 새롭게 거는 장면(1981.3)

개교 이래 30여 성상(星霜), 드디어 우리는 81년의 3ㆍ1절을 기점으로 우리의 숙원이던 종합대학의 역사적 출범을 맞이했다. 오늘부터 그 새로운 장을 기록하기에 이른다. 돌이켜 보면 해공(海公) 신익희(申翼熙) 선생의 건학정신과 성곡(省谷) 김성곤(金成坤) 선생의 육영정신은 이제 또 하나의 금자탑을 쌓았으니, 이 정신을 생명으로 이어받은 우리는 다시금 새 각오 새 결심으로써 면학에 임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원대한 목적과 현상은 종합대학의 간판을 얻는데서 달성되는 것만은 결코 아니다. 문제는 형식적 겉치레의 외실이 아니라, 알찬 학문을 통한 실력배양과 고매(高邁)한 인격도야를 완성하는 내실의 충실에 있음을 새삼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면학분위기를 조성하는 일이요, 그 터전위에서 학문을 탐구하고 인격을 연마하는 일이니, 이는 곧 대학생으로서의 임무요 사명(이 아닐 수 없다. 학생에게는 학생으로서의 본분이 있다. 그 본분은 대학의 질서를 존중하고 인화(人和)로 단결하면서 맡은 바 스스로의 학문에 정진하는 일이다.

만에 하나라도 이에 탈선이 있다면 그것은 학문을 탐구하는 학도(學徒)라기보다는 학생이라는 미명하에 질서를 파뢰하는 집단에 불과할 것이다. 무질서의 집단은 한낱 사회의 공해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 투철한 대학생관이 확립돼야 한다. 그저 그날그날 교문만을 출입하는 학생이라면 그것이야말로 퇴폐적인 추락자와 다름없다. 그로부터 우리는 내일의 희망을 찾아 볼 수 없고, 살았으되 죽은 자와도 같다. 퇴폐적인 추락에겐 생동하는 창조정신이 없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종학대학의 출범과 더불어 한국 속의 세계대학으로 창조성장(創造成長)시켜 가야 한다. 학문과 인격으로서 이 원대한 과업을 성취시켜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사명을 짊어진다. 이를 스스로 자각 해야 한다. 때문에 밖으로는 재단·교수·학생이 삼위일체(三位一體)가 되어 상호신뢰의 바탕위에 인화로 단결하여 면학의 풍토를 진기(振起)할 일이요, 안으로는 이 풍토 위에서 불철주야 면학에 정진할 일이다. 그것만이 우리의 사명을 완수할 수 있는 첩경이니, 종합대학의 출범을 또 하나의 자성(自省)의 계기로도 삼아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진정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찾아야 한다.

시간은 결코 ‘나’를 위에 멎어주는 법이 없다. 쉬지 않고 흐르는 그 시간 속에서 진정한 ‘나’를 찾을 일이다. 그리하여 이제 우리는 종합대학출범의 경축에서 깨어나 진정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자각할 일이다.

사설 / ≪국민대학보≫ 1981-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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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사이버역사관 원문: https://kmuhistory.kookmin.ac.kr/history/1981_1992/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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