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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 80장면 028

우리학교 축제의 연원과 변천

요약

이번 주는 우리학교의 축제인 ‘대동제’가 치러지는 주간이다. 교정 곳곳에는 5월의 싱그러움과 함께 온통 활기가 넘쳐난다. 축제는 흥겨운 문화 행사인데 그 가운데 지성의 전당인 대학에서의 축제는 대학문화의 꽃이다.

1. 1997년 국민대 대동제 모습
1. 1997년 국민대 대동제 모습

이번 주는 우리학교의 축제인 ‘대동제’가 치러지는 주간이다. 교정 곳곳에는 5월의 싱그러움과 함께 온통 활기가 넘쳐난다. 축제는 흥겨운 문화 행사인데 그 가운데 지성의 전당인 대학에서의 축제는 대학문화의 꽃이다.

1966년에 처음 열린 우리학교의 축제는 이후 40여 년 동안 다양하게 변천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창학 이후 시련을 겪어야 했던 우리학교는 개교 20주년 만에야 축제를 개최할 수 있었다. 이때는 봄에 ‘국민축제’가, 가을에 ‘동백축제’가 열렸다. ‘동백축제’는 당시 우리학교 병설로 설립된 국민여자초급대학의 축제였다. 국민여자초급대학은 존폐의 기로에 섰던 우리학교가 새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61년 5·16쿠데타와 함께 소위 ‘대학 정비’의 선풍 속에서 우리학교는 폐교의 위기를 맞이했다. 존폐 위기에서 어렵사리 야간부를 살린 우리학교는 폐지된 주간부 대신 국민여자초급대학을 1962년에 설립했고, 대학정상화에 힘을 쏟아 1964년에는 다시 주간부가 부활되었다. 그리고 1965년 2월에는 중앙농민학교를 인수하여 교세를 확장하였다.

첫 축제가 열린 1966년은 그런 점에서 우리학교가 위기를 극복하고 비로소 대학다운 규모와 체계를 이룬 시기였다. ‘동백축제’는 1967년 국민여자초급대학이 폐지되면서 1968년까지 3회 열리고 마감되었다. 1969년부터는 중앙농민학교를 개편한 국민산업학교의 축제인 ‘인왕제’가 1971년까지 ‘국민축제’와 함께 열렸다. ‘인왕제’는 체육대회를 비롯한 꽃꽂이 전시회·음악감상회·인왕싸롱의 개점·페스티발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진행하였다.

1971년 9월 정릉동으로 이전한 뒤, 1972학년도부터 국민산업대학이 우리학교 산업학부로 개편되면서 두 갈래로 열리던 ‘국민축제’와 ‘인왕제’는 ‘북악제’로 통합 개칭되면서, 축제 행사가 더욱 번성하였다. 이때 처음으로 ‘북악’이란 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후 봄에 열리던 축제는 1976년부터 개교기념일에 즈음한 가을 행사로 바뀌었다.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통일분위기가 한껏 고조되던 1987년에는 ‘북악통일한마당’으로 이름 했다가, 1994년부터 ‘대동풀이’로, 1996년 개교 50주년을 맞이해서는 ‘북악 한마당’의 이름으로 축제를 열었고, 1997년 이후 축제 기간을 다시 봄으로 옮기고 ‘대동제’로 정착되었다.

북악 구성원이 공동체로서 하나됨 뿐 아니라, 갈등과 반목의 질곡을 뛰어넘자는 민족의 염원도 함의한 ‘대동제’의 의미처럼 우리학교의 축제가 더욱 성숙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장석흥(국사학과)교수 / ≪국민대신문≫ 2003-05-19

사료 사진

2. 제2회 국민축전 장면(1967), 3. 국민여자초급대학 제2회 동백축제 현수막(1966.9), 4. 정릉캠퍼스 이전 첫 축제, 제24회 북악제(1972.5), 5. ’94대동풀이·북악가족한마당 현수막(1994.10)
2. 제2회 국민축전 장면(1967), 3. 국민여자초급대학 제2회 동백축제 현수막(1966.9), 4. 정릉캠퍼스 이전 첫 축제, 제24회 북악제(1972.5), 5. ’94대동풀이·북악가족한마당 현수막(1994.10)
원문 보기 — 이 서술의 근거

현행 사이버역사관 원문: https://kmuhistory.kookmin.ac.kr/history/1971_1980/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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