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 80장면 039
명원민속관과 한국의 茶문화
요약
우리대학 후문 건너에 자리한 학교 부속 건물인 단아한 한옥의 명원민속관은, 고 명원 김미희(金美熙) 여사의 유지를 받들어 한국 차문화의 전통을 계승하고 그 교육과 보급에 힘쓰고 있는 현대 한국 차문화의 전당이다.
우리대학 후문 건너에 자리한 학교 부속 건물인 단아한 한옥의 명원민속관은, 고 명원 김미희(金美熙) 여사의 유지를 받들어 한국 차문화의 전통을 계승하고 그 교육과 보급에 힘쓰고 있는 현대 한국 차문화의 전당이다.
명원민속관이 서울시 중구 장교동에서 이곳에 옮겨온 것은 1980년의 일이다. 원래 이 집은 조선조 말기 참정대신으로서 1905년 일본에 의해 강제 체결된 을사늑약에 반대하다가 파직당한 한규설(韓圭卨)의 유택으로 서울시 문화제로 지정된 유서 깊은 곳이다.
명원선생 -재단법인 국민학원의 이사장ㆍ이사를 역임하여 국민대학교 발전에 헌신한 성곡(省谷) 김성곤(金成坤) 선생의 부인)은 오랜 동안 한국에서 잊혀 온 차 문화를 현대에 부흥시킨 대표적인 차인이다. 그녀는 1968년부터 당시 일반에게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던 한국의 차문화 연구에 몰입하여, 차를 마시는 기구인 다구를 비롯하여 차를 재배하고 제조하는 방법은 물론 차를 마시는 예절인 다례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차문화 전반에 걸쳐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것이다.
특히, 명원선생은 국내 최초로 현대식 다실인 녹야재(綠若齋)를 만들고 생활다례를 정립하였으며 1979년에는 한국차인회 창립에 앞장서는 등, 한국차문화의 정립과 교육, 보급에 선구적인 업적을 남겼다. 근대화 달성의 거대한 물결이 전국을 뒤덮어 모든 것이 물질에 귀결될 것 같이 생각되던 격랑의 시기에, 명원선생은 실낱같이 남아 명맥을 유지하던 전통문화의 맥을 찾아 전국을 누비며 정신의 소중함을 잔잔히 일깨워 주었던 것이다. 2000년 5월 25일, 새로운 천년의 첫 차의 날 기념식에서 명원선생은 차인으로서는 최초로 정부로부터 보관문화훈장을 추서 받았다.
1981년 애석하게도 명원 선생은 서거하였지만, 이후 명원민속관에서는 다도교육을 비롯한 다양한 차 문화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82년 국내 4년제 대학으로는 처음으로 다도가 정식 교양과목으로 개설되어, 명원선생과 함께 다문화 연구에 힘썼던 고 민길자(閔吉子) 교수가 오랜 동안 명원민속관에서 열강 하였고 지금도 많은 학생들의 수강이 이어지고 있다. 또한 1981년 만들어진 학생동아리 명운다회는 명원민속관 별당을 동방으로 갖고 대학 차문화 운동을 선도하고 있다.
가끔 조용하게 자신을 되돌아보며 사색에 잠기고 싶을 때, 차 향기 그윽한 명원민속관을 한가로이 거닐며 한 잔의 차를 벗 삼아 잠시 여유의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김동명(정치외교학과) 교수 / ≪국민대신문≫ 2003-06-02
원문 보기 — 이 서술의 근거
현행 사이버역사관 원문: https://kmuhistory.kookmin.ac.kr/history/1981_1992/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