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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 80장면 041

약동하는 젊음, 무르익는 지성

요약

지금부터 29년전인 1979년 우리대학에서 열린 북악체전의 구호다. ‘북악체전’이라는 명칭은 종합체육대회, 교내체육대회, 춘계·추계체육대회, 백호종합체전에 이어 1975년에 처음 등장했다.

1. 1976년 춘계북악체전 모습(1976.6), 2. 1976년 춘계북악체전 당시 캠프파이어 장면
1. 1976년 춘계북악체전 모습(1976.6), 2. 1976년 춘계북악체전 당시 캠프파이어 장면

지금부터 29년전인 1979년 우리대학에서 열린 북악체전의 구호다. ‘북악체전’이라는 명칭은 종합체육대회, 교내체육대회, 춘계·추계체육대회, 백호종합체전에 이어 1975년에 처음 등장했다.

북악체전은 모든 학과·모든 학년이 참여하는 중요한 연례행사였다. 국민대신문에는 북악체전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이 높아 경기종목과 경기시간뿐만 아니라 진행계획과 채점기준, 예선과 결승진출상황, 최종 경기성적과 시상자까지 1면에 상세하게 보도했다. 1979년 5월 28일자 신문에는 전년까지 심판을 맡았던 체육학과가 직접 경기에 참가하게 되어 일부 학생들이 “운동을 전공으로 하는 학생들과 겨루는 것은 불공평하다”며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1976년 6월 2일과 3일에 개최됐던 북악체전에서는 레크레이션 종목과 특별종목이 대폭 추가되어 농구, 축구, 배구, 육상 등과 함께 총 22개 종목으로 진행됐다. 풍선 터뜨리기, 자전거, 별보기 경기, 망나니 길들이기 등의 종목이 큰 호응을 얻었다. 폐회 직후에는 장기자랑 - 막걸리파티 - 캠프 파이어 등의 순서로 ‘젊음의 행진’이 진행되어 참가한 학생들이 젊음을 마음껏 불태울 수 있었다.

학생들의 참여도는 북악체전의 성공적 개최의 관건이었다. 82년 5월 13일에 열린 북악체전에서는 일부학생에 국한해 참가할 수 밖에 없었던 구기종목을 없애고 모든 학생들이 참가할 수 있는 차전놀이 등의 민속경기를 새로 편성했다. 또 여학생이 참가하는 경기를 대폭 늘리는 등 대회 진행에서의 세심한 배려가 돋보였다.

1984년 5월 19일에 열렸던 북악체전에는 게임위주의 체전을 지양하고 대학자율화, 민중과의 호흡, 인권 회복에 대한 학생들의 열망을 반영하기 위해 마당놀이를 마련했다. 700여명의 국민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민주학우여 여기’라는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폭력타도’, ‘인권회복’이 써져 있는 머리띠를 두른 채 민주화를 염원하는 굿과 폭력경찰 화형식 등으로 구성한 마당놀이를 연출했다. 당시 학보에는 “마냥 즐기기 위한 행사에서 좀더 깨치고 한데 어우러져 보려는 북악체전을 만들지 못한 데에 대한 자성이 북악골에 울려야 한다”고 실려 있다.

강혜령 기자 / ≪국민대신문≫ 2008-10-06

사료 사진

3. 1984년 북악제천 당시 마당극 장면, 4. 1982년 춘계 북악체전 당시 농악대 공연 장면
3. 1984년 북악제천 당시 마당극 장면, 4. 1982년 춘계 북악체전 당시 농악대 공연 장면
원문 보기 — 이 서술의 근거

현행 사이버역사관 원문: https://kmuhistory.kookmin.ac.kr/history/1981_1992/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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