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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 80장면 008

개교기념일에 담긴 역사적 의미

요약

매년 10월 18일은 국민대학교의 개교를 기념하는 날이다. 금년은 국민대학교가 개교한 지 57주년이 되는 해이므로, 오는 10월 18일에는 국민대학교 개교의 의미를 되새기고 앞으로의 발전을 다짐하는 57주년 기념행사가 어김없이 치러질 것이다.

부산 피난지에서의 개교 6주년 기념식장(1952.12.18)
부산 피난지에서의 개교 6주년 기념식장(1952.12.18)출처 https://kmuhistory.kookmin.ac.kr/history/1946_1958/view

매년 10월 18일은 국민대학교의 개교를 기념하는 날이다. 금년은 국민대학교가 개교한 지 57주년이 되는 해이므로, 오는 10월 18일에는 국민대학교 개교의 의미를 되새기고 앞으로의 발전을 다짐하는 57주년 기념행사가 어김없이 치러질 것이다.원래 개교기념일은 말 그대로 개교한 날로 정하든지 아니면 행사를 하기 좋은 날을 택해 정해진다.

본래 국민대학교는 미군정으로부터 인가를 받은 1946년 12월 18일을 개교기념일로 삼아 행사를 치러왔다. 당시는 1학기가 1946년 9월 1일에 시작하였기 때문에 국민대학교는 이에 맞춰 개교를 준비하였고 서울대 또한 마찬가지였다. 해방 후 최초의 사립대학으로 국민대학교가, 최초의 국립대학교로 서울대학교가 각각 설립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해방 직후 한국에서의 대학설립 움직임은 두 갈래로 나타나고 있었다. 하나는 미군정에 의한 것으로 일제하 경성제국대학이었던 경성(서울)대학을 주축으로 국립대학을 세우려 하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해공(海公) 신익희(申翼熙) 등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환국한 임시정부 요인들을 중심으로 사립대학을 세우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당시 임시정부요인들은 미군정청과 신탁통치와 군정기간 등을 둘러싸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1946년 3월 3일, 임시정부요인들은 국민대학설립기성회를 발족하고 대학설립에 박차를 가했다. 일본제국주의의 지배에서 막 독립한 조국에 새로운 국민국가를 건설하는 데에 필요한 중견 ‘국민’을 양성하려고 한 것이었다. 미군정청도 국립대학 설립을 추진해 같은 해 7월 국립대학설립안을 정식 발표했다. 이에 교수와 학생들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반대운동이 일어났다. 소위 ‘국대안파동’이 그것인데, 반대의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일본제국주의가 설립한 경성제국대학을 모체로 한다는 것이었다.

1946년 8월 22일, 미군정청은 국대안에 대한 반대를 무릅쓰고 ‘국립서울대학교 설립에 관한 법령’을 공포했다. 서울대학교는 10월 15일에 개교하였다. 하지만 미군정에 정치적으로 대립하고 있던 임시정부요인들이 세운 국민대학교는 서울대학교보다 약 4개월 늦은 12월 18일에야 비로소 정식 인가를 받았다. 뒤늦은 개교 인가의 기쁨이 얼마나 컸겠는가? 그리하여 그날을 기념일로 삼아 피난지 부산에서도 기념식은 거행되었다. 그 이후 정릉으로 캠퍼스를 이전한 후 추운 겨울이고 방학기간에 개교기념식을 치르는 것이 물리적으로 어려움이 뒤따랐다. 이에 1975년부터 2개월을 앞당겨 10월 18일에 가을 축제를 겸해 개교의 의미를 만끽할 수 있도록 새로운 개교기념일이 만들어졌고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김동명(정치외교학과) / ≪국민대학보≫ 2003-03-31

사료 사진

정릉캠퍼스 운동장에서 거행된 개교 29주년 개교기념 행사(1975.10.18)
정릉캠퍼스 운동장에서 거행된 개교 29주년 개교기념 행사(1975.10.18)출처 https://kmuhistory.kookmin.ac.kr/history/1946_1958/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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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사이버역사관 원문: https://kmuhistory.kookmin.ac.kr/history/1946_1958/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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