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민대 80장면 024

「리포트」 학점으로 얼룩진 4년

요약

뭔가 채 간직하기도 전에 피폐하고 초췌한 모습으로 긴 그림자를 이끌고 쫓겨 간다. 4년이라는 기간 동안 학원(學園)의 소요(騷擾)-비정상 방학-Report로 점철된 속에서 어디에 보람이 있었던가 골몰히 생각해 봐도 막연한 생각뿐이다.

1970년대 초 입학식 장면
1970년대 초 입학식 장면출처 https://kmuhistory.kookmin.ac.kr/history/1971_1980/view

뭔가 채 간직하기도 전에 피폐하고 초췌한 모습으로 긴 그림자를 이끌고 쫓겨 간다. 4년이라는 기간 동안 학원(學園)의 소요(騷擾)-비정상 방학-Report로 점철된 속에서 어디에 보람이 있었던가 골몰히 생각해 봐도 막연한 생각뿐이다. 있어야 할 젊은 날의 낭만과 기개 대신에 캠퍼스에는 낙엽이 이 구석 저 구석으로 뒹굴고 언제 방학이 되어야 하는지, 언제 강의가 시작되어야 할런지도 모른 채 책상위에는 Report의 홍수장이 되고 말았던 대학 4년의 길고 괴로운 막은 내린다.왜 남들은 세계 속의 대학이며 대학생의 가야 할 길이 이거라고 외칠 때 학교는 문을 닫고 나는 자부하지도 외치지도 못했고 뭔가 생각할 여유도 사태의 추이도 주시하지 않은 채 귀중한 것을 거부하고 내쫓힘을 당해야만 했는지 모르겠다. 세칭 시쳇말로 ‘얘기가 되지’라는 말이 머리에 남는다.

어떤 사실이든지 그것을 합리화시키려 하면 언어의 기술로써 모든 것을 일단(그 사실이 옳든 그르든 간에) 얘기가 되는 듯이 보인다(적어도 눈에 들어오는 확실한 물질을 제외하고서는). 지식을 축적한 자들은 자기 행동의 합리화를 위해서 자기보다 지식의 축적의 크기가 작은 자들에게 흔히 언어로써 설득을 가한다. 하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설득 당함’이지 결코 ‘인격적 수긍’은 아니다. 또한 그 가치 없는 지식의 축적으로 인한 언어의 술수로써 설득을 가한 자는 ‘지식 있는 사람’에 불과하지 결코 ‘양식 있는 지성인’은 못된다.

적어도 학문의 전당에 만큼은 ‘지식이 있는 사람’ 그 사람만이 존재하게 되고 ‘어쩔 수 없는 설득 당함’만이 학생이 가질 수 있는 최상의 미덕(美德)이라는 풍조는 사라져야 한다. 어떻게 하면 하루가 무사(無事)와 안일(安逸)로써 지나가느냐 하는 식의 사고가 존재하는 한 그것은 기간의 사장(死藏)이지 보람의 창조는 아니다. 비록 어찌할 수 없는 외계의 힘이 가해온다 하더라도 근본적으로 진리탐구라는 대학의 사명을 미리 기피하고 보잘 것 없는 어떤 것에 대한 욕심으로 급급한다면 어떤 이유와 언어)의 술수를 가지고서도 그 비굴함과 사명에 대한 기피가 훗날 정당화 되지는 못할 것이다.굳게 닫힌 교문이 열렸다고는 되어 있으나 강의는 부존재(不存在)한 모순이 꼭 계속되어야만 했었으며 강의도 없고 시험도 없는 상태 속에서 원고용지에 의한 학점이나 주고받는 것 등이 연례 행사화 되어 버린 우리 세대의 대학생활의 숙명(?)에서 탈피 할 수는 없었던 것일까. 무언가 두려워하고 ‘타부시(視)’하기 이전에 충분한 대화와 학문에 대한 추구열을 함께 할 수는 없었을까?

우리에게는 보석 밀수를 하고서도 구속집행정지처분을 받을 기술(?)도 없고 신성한 법정에서 법관에게나 증인에게 칼을 휘두르는 정도의 만용도 없고 국민정서생활의 향상과 학생들의 학습에 도움을 주겠다는 명목 아래 사슴이나 사자 등을 사들일 외화를 구경조차도 할 수 없고 실내에 수영장과 에스컬레이터까지 시설한 아방궁을 소유할 재벌도 못되고... 이런 것은 공부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고 학생이니까 역시 공부, 공부만 해야 한단다. 그 어떤 귀중함에 대한 의구와 갈망의 미완성은 훗날의 숙제로 남겨둔 채 학점 얻는 기술(?) 덕분에 신(神)의 보호하심 덕분에 교문을 나서게 되었다. 봄이 되면 북악의 상쾌한 풀내음도 가을만 되면 으레 주인공이 된 캠퍼스의 낙엽들도 심오한 진리 앞에 우매한 우리를 깨우쳐 주기에 열변을 토하시던 H교수님의 강의와도 헌신적으로 격려를 아끼지 않던 K양과도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우리의 조그만 소리를 대변해 주었던 대학보(大學報)와도 이젠 조용히 「아듀」를 고할 순간이다. 닫혀 있는 싸늘한 철문 앞에서 시집살이 끝에 돌아 온 자식을 내쫓으며 닫아버린 친정집 대문을 연상하며 눈물짓는 가련한 모습도 비정상방학과 기약 없는 개강일자와 리포트와의 기막힌 숨바꼭질도 가슴에 박힌 커다란 멍으로 남겨 둔 채 말이다.

신순호(법학 4)동문 / ≪국민대학보≫ 1975-01-13

사료 사진

법학과 모의재판 광경(1970년대)
법학과 모의재판 광경(1970년대)출처 https://kmuhistory.kookmin.ac.kr/history/1971_1980/view
신순호(법학 4)동문
신순호(법학 4)동문출처 https://kmuhistory.kookmin.ac.kr/history/1971_1980/view
원문 보기 — 이 서술의 근거

현행 사이버역사관 원문: https://kmuhistory.kookmin.ac.kr/history/1971_1980/view

사료 사진 크게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