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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 80장면 053

2호관에서 북악관으로 불려 지기까지

요약

"2호관에서 북악관으로 불려지기까지" 15층 북악관(옛 2호관)은 1960년대 우리 학교 구성원 모두의 소망이 담긴 결실이었다. 당시 창성동 캠퍼스는 협소하여 늘어나는 학생 수에 발맞춰 충분한 공간을 마련하기 곤란한 상황이었다.

2호관(북악관)131
2호관(북악관)131

"2호관에서 북악관으로 불려지기까지" 15층 북악관(옛 2호관)은 1960년대 우리 학교 구성원 모두의 소망이 담긴 결실이었다. 당시 창성동 캠퍼스는 협소하여 늘어나는 학생 수에 발맞춰 충분한 공간을 마련하기 곤란한 상황이었다. 캠퍼스 이전이 절실하였던 것이다. 그 뒤 후보지로 여러 곳을 물색하던 중 정릉 이곳을 적지로 선정되면서 1965년부터 교사이전을 위한 정릉 교지 매입이 이뤄지기 시작하였다. 이후 3년의 공사 끝에 1971년 9월 1호관(현 본부관)이 완공되면서 창성동에서 정릉으로 이전하였으며, 이와 더불어 2호관 공사가 시작되었다. 2호관이 완성되기 전까지 부족한 공간은 11개동의 임시 건물을 지어 사무실로 사용하였다.

2호관은 2단계로 나뉘어 공사가 진행되었다. 1단계는 1971년 9월부터 1972년 5월까지 공사를 진행하여 6개 층을 완공하였다. 이에 가장 우선적으로 중앙도서관이 1층에서 3층까지 자리하였으며, 나머지 층은 강의실로 사용되었다. 그 뒤 7층부터 15층까지의 2단계 공사가 1972년 4월부터 11월까지 진행되었으며, 내부공사가 완전히 마무리되는 1974년 5월에 비로소 완공하게 되었다. 이로써 공간부족 문제는 어느 정도 해소되었으며, 학생들의 활동 또한 눈에 띠게 활발해졌다.

2호관에는 인문대학 등 단과대학 뿐만 아니라 시청각실(7층), 학생회관(9층)이 들어섰으며, 이외에도 교수연구실, 어학연구소, 음악감상실, 박물관, 학보사 등 언론사, 각종 고시준비실 등 다양한 부서가 자리하였다. 당시 2호관은 우리 학교의 모든 단과대학과 부속시설을 전부 수용하는 메머드급 건물이었다. 그 뒤 공학관(1976), 학생회관(1978), 중앙도서관(1979, 현 조형관), 과학관 등이 건설되면서 포화상태에 이른 2호관이 조금씩 숨통을 틀 수 있게 되었다. 1999년 경상관, 법학관이 준공되면서 경상대학과 법과대학이 빠져나갔다. 중앙도서관이 있던 자리는 학생들의 복지를 위한 공간으로 거듭나 미네르바가 탄생하였으며 서점, 안경점 등이 들어서 있다.

2호관이 지금의 이름인 북악관으로 바뀐 것은 2001년 5월 ‘도약 2000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추진된 새로운 UI(University Identity) 선포와 맞물려 이뤄졌다. 이는 북악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우리 학교에 걸맞으며 국민대학교의 상징적 대표성을 띤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것으로 보여진다. 그 뒤 북악관은 2002년 10월부터 조명을 받게 되면서 어둠에 빛나는 아름다운 교정의 모습으로 탈바꿈하였다.

이제 북악관은 올해로 30년을 맞이한다. 그 동안 수많은 북악인이 한 번쯤 거쳐 갔을 북악관이다. 어느 한 곳 그들의 손길이 머물지 않은 곳이 없다. 해마다 새로운 새내기들이 그 자리를 다시 메우곤 한다. 북악관은 언제나 맏형처럼 듬직하니 그곳에 서있으며 발전해 나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지켜볼 것이다.

이계형(박물관 특임교수) / ≪국민대신문≫ 2004-03-15

사료 사진

북악관 야간전경, 북악관 전경, 2호관 준공 후 학교전경
북악관 야간전경, 북악관 전경, 2호관 준공 후 학교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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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사이버역사관 원문: https://kmuhistory.kookmin.ac.kr/history/2004_now/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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