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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 80장면 003

교훈에 담긴 의미

요약

교훈이라면 으레 자유ㆍ진리ㆍ정의 같은 말이 익숙한 사람들에게, '이교위가(以校爲家)ㆍ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는 교훈은 색다를 뿐 아니라 생소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1. 국민대 교훈, 이교위가 사필귀종(해공 친필)
1. 국민대 교훈, 이교위가 사필귀종(해공 친필)

교훈이라면 으레 자유ㆍ진리ㆍ정의 같은 말이 익숙한 사람들에게, '이교위가(以校爲家)ㆍ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는 교훈은 색다를 뿐 아니라 생소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지금은 그 교훈에 남다른 자긍심을 지니고 있지만, 필자도 교훈에 담겨진 역사성을 이해하기까지 오랫동안 '왠지 교훈으로는 미흡하고 어색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면 우리의 교훈은 어떻게 정해졌으며,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일까.

본교는 임시정부 건국정책의 일환으로 세워진 '민족의 대학'이었다. 해방 후 많은 대학이 세워졌지만, 본교는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을 계승한 남다른 역사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 같은 역사성은 오늘날 국민대학 정체성에 원류를 이루지만, 그 때문에 건학 초기에는 미군정의 제제와 탄압 속에서 가시밭길을 걸어야 했다.

그것은 해방 정국에서 임시정부가 겪어야 했던 수난과 다를 바 아니었다. 본교는 민족사회의 뜨거운 관심 속에 출발했지만, 교정(校庭)을 구하지 못한 채 이곳저곳을 전전하거나, 교사(校舍)가 강제로 철거당한 일도 있었다. 이처럼 위기 상황에서 교직원, 학생 등 학교 구성원들은 본교 사수(死守)를 위해 혼연일체가 되어 온 힘을 쏟았다. 때론 교사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미군정 당국에 저항하였고, 사회여론을 통하여 피어린 교사 사수 투쟁을 전개했다.

'이교위가'와 '사필귀정'은 그러한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성된 교훈이었다. 그들은 '학교를 내 집처럼' 위했고, 또 '모든 일이 결국에는 정의로 귀결된다'는 신념으로 굳게 뭉쳤다. 그리고 미군정과 이승만 독재정권의 탄압으로부터 국민대학을 끝내 지켜낼 수 있었다. 때문에 그 교훈에는 본교가 헤쳐 온 역사가 온축되어 있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교훈이 누구의 강요나 일방에 의해 정해진 것이 아니라, 구성원 모두의 자발적 의지로 일궈낸 산물이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대학 구성원의 의견을 존중하는 정신으로 이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어느 대학보다 자유스런 본교의 교풍 역시 그 같은 환경에서 형성될 수 있었다.

과거 없이 현재가 있을 수 없듯이, 교훈의 역사성은 현재와 미래 발전을 위해서도 굳건한 버팀목으로 자리하고 있다. 21세기를 맞이하여 세계의 대학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이교위가'의 애교 정신과 끝내 이루고 말리라는 '사필귀정'의 굳건한 신념이 필요할 것이다.

장석흥(국사학과) 교수 / ≪국민대학보≫ 2002-10-07

사료 사진

2. 해공 신익희의 '이교위가' 교훈 친필
2. 해공 신익희의 '이교위가' 교훈 친필
원문 보기 — 이 서술의 근거

현행 사이버역사관 원문: https://kmuhistory.kookmin.ac.kr/history/1946_1958/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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