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 80장면 010
우리학교의 교표와 교가에 담긴 의미
요약
국기(國旗), 국가(國歌) 등은 그 나라의 신성한 존엄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대표성을 띤다. 한국인으로 외국에 나가 태극기를 본다거나 애국가를 부른다던가 하면 무척 자랑스럽고 가슴 깊이 저려오는 그 무엇인가를 느끼기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강한 소속감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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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國旗), 국가(國歌) 등은 그 나라의 신성한 존엄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대표성을 띤다. 한국인으로 외국에 나가 태극기를 본다거나 애국가를 부른다던가 하면 무척 자랑스럽고 가슴 깊이 저려오는 그 무엇인가를 느끼기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강한 소속감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모습니다.학교도 이를 대표하는 고유의 교기(校旗)와 교가(校歌)가 있다. 하지만 북악인들이 학교의 교기와 교가가 가지는 참된 의미를 새기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밝혀보고자 한다. 우리학교의 설립 초기 교기는, 세월이 흐르면서 약간씩 변화되긴 하였지만, 백성 즉 국민을 뜻하는 잎사귀가 대학이라는 글자를 받들고 있는 형상이었다. 국민대학은 '국민이 받들고 있는 대학'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그 뒤 21세기를 향한 도약의 준비로 새로운 교육체계를 확립하기 위한 교육개혁의 일환으로 2000년 5월 UI선포를 계기로 지금의 교기로 바뀌었다.
교기는 한국의 전통적 오방정색(五方正色, 청·백·적·황·흑)을 기반으로, 바깥의 원은 우주와 세상을, 안쪽의 부드러운 곡선은 백두대간과 북악을 뜻한다. 다양한 개성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거대한 변화를 창조해 나가는 과정을 나타낸 것으로, 국민대학교에서 배출한 인재들이 각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리학교의 교가는 언제 만들어졌는지 확인할 자료가 없다. 다만 그 작사자를 통해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우리학교 교가를 작사하신 분은 시조 시인인 가람 이병기 선생이다. 이병기 선생은 일제강점기에 '한글맞춤법통일안'을 마련하시고, 그 뒤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기도 하셨다. 이러한 그가 우리학교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48년이다. 당시 서울대학교 교수로 재직하시면서 국민대학교로 출강하신 것이 계기였다. 당시 국민대학교는 번듯한 교사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던 차, 창성동의 옛 체신이원양성소를 얻어 터전을 닦기 시작한 해였다. 그런 만큼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교가를 만들었지 않았을까 한다. 가사 내용 또한 미군정을 종식하고 우리의 정권을 세운 해이기도 하여, '새로운 민주의 나라 사공을 기르는 국민대학'이라 하여 나라의 지도자를 양성하고자 하는 뜻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이는 국민대학교 건립취지서에서 "청년에게 심오한 학술을 배양하여 국민대중의 지도자 될 소질과 국가유용의 인재를 육성하고자"한다는 비전을 제시한 것이나, 민족의 자주적 독립국가건설과 새로운 국가의 인재를 양성하고자 했던 해공 신익희 선생의 창학이념과도 일맥을 같이한다. 이러한 이념은 '도약 2010'으로 이어져 "창의성과 리더쉽을 겸비한 21세기 글로벌 시티즌을 양성하는 세계 속의 명문대학"이라는 비전을 제시하기에 이르렀다. 우리의 교기와 교가는 학교의 전통과 같이 살아 숨 쉬어 온 것이다. 그래서 그것은 '태극기'와 '애국가'처럼 언제나 우리의 가슴속에서 활기차게 요동쳐야 하며, 세계 속으로 뻗어나가 우리의 자긍심이 되어야 한다.
이계형(박물관 특임교수) / ≪국민대신문≫ 2004-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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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사이버역사관 원문: https://kmuhistory.kookmin.ac.kr/history/1946_1958/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