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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 80장면 025

길을 묻는 이 있거든 북악(北岳)을 바라보게 하라

요약

76년도를 맞으면서 본교는 대학교육내용의 질적인 향상과 내적인 충실을 기하기 위한 몇 가지 획기적인 방안을 수립, 이를 이번 학기부터 실시하고 있다.

1, 1970년대 중반 강의실, 2. 1970년대 중반 재학생 모습, 3. 1970년대 중반 재학생들(73계단)
1, 1970년대 중반 강의실, 2. 1970년대 중반 재학생 모습, 3. 1970년대 중반 재학생들(73계단)

76년도를 맞으면서 본교는 대학교육내용의 질적인 향상과 내적인 충실을 기하기 위한 몇 가지 획기적인 방안을 수립, 이를 이번 학기부터 실시하고 있다. 그 하나가 강의시간의 50분단위화이며, 다른 하나가 강의계획서제(講義計劃書制)의 활용이다. 전자는분명 교육형식에 관한 문제이며, 후자는 분명 교육내용에 관한 문제이다. 여기서 확인되는 것은 형식적이건 내용적이건 어떠한 측면에서도 교육의 허실화를 인정치 않겠다는 학교당국의 단호한 의지이다. 학문의 상아탑으로서의 대학사명에 관한 한 이들이 가지는 의의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안 된다.

학문의 현장을 떠난 곳에서, 그리고 그 속에서의 인격체의 성장과 성숙을 도제(挑除)한 곳에서 대학은 존립의 여하한 의의도 찾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50분 강의제 효율적인 운영이 해결해야할 과제로 남기는 한다. 가령 소단위 강좌의 경우 문제는 없겠으나 대단위 강좌의 경우, 교수 입실 시간과 출석 점호 시간을 제할 경우, 실제 수업시간은 40분이 채 안될 수도 있다는 점, 강의가 무르익어 본격화되려고 하다가 중도에서 끝나야 한다는 아쉬움 같은 점, 수강생들의 질문이나 토론이 결국에는 시간적으로 어떤 한 시간 혹은 두 시간이 중복되어 듣고 싶은 강좌를 듣지 못하게 된다는 점 등이 앞으로 연구되어야 할 문제들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러한 난점은 집약적인 강의방식, 호명 이외의 출석체크 방법의 개발, 시간표 작성의 기술적인 문제들이 해결, 강구된다면 100분이나 150분 강의를 계속하여 학생과 교수가 모두 지쳐버리는 폐단과 비능률을 지양하고 새로운 학풍을 수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해도 무방할 것이다. 실라버스제는 예년에도 실시되어 오던 것이나 실험대학 인가와 더불어 강화된 것이다. 이번 학기부터는 이를 복사, 학생들에게 배부함으로써 수강생들로 하여금 교수지침이나 교수요목을 숙지케 하고 이를 예습이나 복습에 이용케 한 것이다.학기말에는 학생들도 참석한 평가회에서 그 성과와 문제점 등을 반성할 기회를 갖는다고 한다. 계획이 모든 일의 성패를 판가름 한다면 이는 교수계획 자체의 미비에서 오는 강의의 부실을 최대한 줄여 보자는데 그 근본취지가 있다고 하겠다.그러나 이 모든 것은 어디까지나 수업을 담당하는 교수 측에서의 문제이지, 수업을 받는 학생 측에서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아무리 강의시간을 쪼개고 아무리 강의내용이 충실하다고 하여도, 이를 받아들이는 학생들이 자기성장의 노력을 게을리 한다면 이 모든 것은 한낱 물거품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평범한 진리이지만 또한 절실한 것이기도 하다.학기 초 본교는 국내외 석학들을 초빙하여 교수진을 대폭 보강함으로써 어느 대학에 못지않은 강팀의 교수진을 확보하고 있다. 이들을 좋은 의미에서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전적인 책임은 오직 학생들에게만 달려 있는 것이다.더욱이 경계해야 될 것은 학업태도의 형식화이다. 타율속의 창조는 창조가 되지 못하며 진정한 의미의 성장은 자기발견의 내적성찰을 통해서 이룩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수업시간에 주어지는 과제물이 형식화하고, 강의도서(講義圖書) 독후감 제출이 형식화할 때 그것은 곧 수업에 임하는 자세나 그 인생전체 까지도 형식화한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물론 남에게서 주어지는 것만을 받아들인다고 하여 대학생활이 성공적인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대학은 분명 그 이상의 것이며, 인생도 역시 그 이상의 것이다. 단지 여기서 우리는 어떠한 이름으로도 학구적인 태도의 불성실과 태만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는 사실만을 재확인하고자 할 따름이다.

우리는 도서관의 모든 책들이 학생들의 손때로 더렵혀지기를 원하며 도서관의 서가가 학생들이 빌려간 책으로 텅 비게 되기를 원한다. 또한 책을 사달라는 요구와 성화가 다른 어떠한 요구보다도 빗발치기를 원한다. 「이교위가(以校爲家)」곧 학교를 집으로 삼아 생활하고, 도서관을 공부방으로 생각하고, 운동장을 앞마당으로 생각하고 젊음과 정열을 불태워 줄 것을 희망한다. 그 때 우리는 어느 시인의 글귀를 다음과 같이 고쳐 말할 수 잇을 것이다. 즉 「길을 묻는이 있거은 북악(北岳)을 바라보게 하라」

사설 / ≪국민대학보≫ 1976-03-31

원문 보기 — 이 서술의 근거

현행 사이버역사관 원문: https://kmuhistory.kookmin.ac.kr/history/1971_1980/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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