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 80장면 026
만학(晩學)의 변(辯)
요약
내가 대학, 그것도 장안(長安)의 명문인 국민대학에 발을 들여 논 때는 내 나이 30을 훨씬 넘어서다. 1955년, 아직 6.25의 총성이 귀에 쟁쟁하게 울려오는 전후(戰後)의 일이다.
내가 대학, 그것도 장안(長安)의 명문인 국민대학에 발을 들여 논 때는 내 나이 30을 훨씬 넘어서다. 1955년, 아직 6.25의 총성이 귀에 쟁쟁하게 울려오는 전후(戰後)의 일이다. 그때만 해도 아직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기 전이어서 군인인 나로서는 전열을 재정비하고 전후복구사업에 매진하는 것이 더 중요한 임무의 부하(負荷)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것만으로써는 만족할 수 없는 한 정열이 있었다. 그것은 한마디로 향학열이었고 젊은이와의 허심탄회한 대화의 그리움이었다.
젊음과 낭만과 배움. 그것은 긴 인류의 역사에서 떼어 놓을 수 없는 하나의 진리요, 불변의 함수관계였다. 하지만 내 연배의 많은 젊은이들은 불행히도 이와 같은 특권(?)을 누리지 못한 채 쓰디 쓴 전쟁의 과중에 휩쓸려야만 했다. 일본 식민통치하의 2차 대전이 그 하나였고 6.25동란이 또 다른 하나였다. 그리하여 내 연배의 대부분은 젊음도 낭만도 배움도 송두리째 전쟁터에 묻어 버리지 않으면 안 되었었다. 그렇다고 하여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시들어졌을까? 젊음에 대한 향수가 사라졌을까? 오히려 이런 것들이 우리로부터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이에 대한 정열은 더 뜨거워졌고 그것이 내 나이 30을 훨씬 넘어서야 대학의 문을 두드리게 한 결심을 굳혀 준 계기였다.
돌이켜 보면 일본 식민지하의 36년 동안 우리는 너무나도 잃은 것이 많았다. 조국과 자유와 젊은 등 온통 빼앗긴 것뿐이었다. 만주로 남양(南洋)으로 그리고 북해도(北海島)로 일본 군국주의 쇠사슬에 끌려 다니면서도 우리가 잃었던 그 모든 것을 되찾으려 발버둥 쳤었다.연합군과의 싸움에서 일본 제국주의의 방탄조끼 노릇을 하면서도 우리는 우리의 것을 찾으려고 애태웠다. 그러다가 1945년, 조국광복과 함께 우리는 우리가 그렇게도 열망했던 그 모든 것을 한꺼번에 되찾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기쁨을 누리는 것도 잠깐이었다.우리가 찾은 자유와 평화, 젊음과 배움을 채 꽃피우기도 전에 우리는 조국의 분단과 동족상잔의 비극 속에서 또 다시 젊음과 낭만 그리고 배움을 송두리째 빼앗겨야만 했다. 오직 자위(自慰)의 변(辯)이 있다면 자유와 평화 그리고 조국수호의 긍지였다고 자부하는 것이다.이처럼 나의 세대는 조국의 비극적 운명과 부침(浮沈)을 같이 했으니 설사 학문적 기반이 약한 만학의 길이었을지라도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가는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내 세대의 비극적 배경 속에서 잠시의 평은(平隱)을 틈타 시작된 배움의 길은 결코 평탄(平坦)하지만은 않았다. 무엇보다도 어려웠던 것은 오래 쉬었던 학문(學問)의 길에서 새로운 학문(學問)의 물결을 헤쳐 가는 것이었다.사실 당시의 국민대학에는 나와 같은 만학 내지 노학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 모두 하나 같이 배우고자 하는 의욕은 대단했지만 대부분의 만학들은 직장을 가지고 있거나 군 복무중이어서 생소한 학문인데도 불구하고 정열을 다하여 열심히 공부했다.이처럼 만학에다 군 복무중의 배움이라 어려움은 많았지만 못 배웠던 공부를 한다는 사실은 늘 나 자신을 즐겁게 해 주었다. 그렇지만 당시에도 과도기에 학교에 다닌 학우 (學友)들이나 요즈음의 젊은 학생들에게는 이런 것들이 오히려 사소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 대신 대학에 다니는 것은 출세나 치부의 길이어야 한다고 믿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나의 만학의 길에서 대학이 결코 출세나 치부(致富)의 왕도는 아니지만 우리가 일생을 통하여 다시 찾을 수 없는 젊음과 낭만과 배움을 주는 장소임에는 틀림없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내 어찌 이런 것을 가볍게 여기겠는가? 이런 점에서 볼 때 나의 국민대학은 나에게 참 인생을 되찾아 준 영원한 은혜요 진리의 상(像)이었다.
이제 우리 국민대학이 새 교사를 짓고 교세를 확장하여 숱한 영재를 길러 내면서 하루하루 발전하는 모습을 보니 내 비록 만학의 길은 걸었지만 그 때 우리 국민대학 동창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는 사실에 자부심과 깊은 애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다시 한 번 나에게 새로운 삶의 뜻을 일깨워 준 모교의 영원한 발전이 있기를 빌면서 만학의 변(辯)에 가름하고자 한다.
전부일(정치학과 10회, 1959)동문 / ≪국민대학보≫ 1976
사료 사진
원문 보기 — 이 서술의 근거
현행 사이버역사관 원문: https://kmuhistory.kookmin.ac.kr/history/1971_1980/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