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민대 80장면 020

<국민대학과 나>, 수위실 근무 최일부 씨

요약

회고하여 보건데 내가 국민대학을 지켜오고 아껴 온지도 벌써 17여년이 흘러갔습니다. 흐르는 세월 따라 눈이오나 비가 오나 나는 수위실에서 일하여왔습니다.

국민대 창성동캠퍼스 수위실(1960년대)
국민대 창성동캠퍼스 수위실(1960년대)출처 https://kmuhistory.kookmin.ac.kr/history/1959_1970/view

회고하여 보건데 내가 국민대학을 지켜오고 아껴 온지도 벌써 17여년이 흘러갔습니다. 흐르는 세월 따라 눈이오나 비가 오나 나는 수위실에서 일하여왔습니다. 또 흘러간 세월 속에는 교직원도 바뀌었고 수많은 학생들도 배워 나갔습니다. 참으로 지난 일을 회고하건데 꿈만 같습니다.

내가 학보사의 원고청탁을 받고 <국민대학과 나>와 관하여 몇 자 적어 봅니다. 당시 1950년 9·28수복으로 어수선한 수도 서울과 함께 본 대학도 그때 그저 초라한 수난을 면치 못한 체 개강을 기다리고 있을 무렵 김진옥 씨(당시 서무과 근무) 소개로 고 해공 신익희 학장 면접 하에 본 대학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당시는 강의실 6개 뿐 곳곳에 흩어지고 무질서한 환경을 나는 열심히 힘을 다하여 일했습니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학교 측과 당시 재단 이사장 정병조 씨와의 근 4~5년간의 분규로 학생들이 앞장서서 학교를 지켜왔습니다. 회상할 때 당시의 고심은 지금도 잊어지지 않습니다. 재단 측과의 분규가 끝났을 때 본 대학은 학장님으로 계셨던 고 해공 신익희 선생의 대통령 선거 유세로 인한 급서의 소식으로 또 하나의 슬픔에 잠기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으면 당시 재학생 일동은 영구차를 끌고 국민의 애도 속에 서울 장안을 묵묵히 지날 때는 국민대학은 마치 부모님 없는 천애고아 같은 느낌에 눈물이 앞을 가렸으며 언제 국민대학도 타 대학과 같이 발전할 수 있을까? 가슴깊이 맺힌 소망이었습니다.

그 후 현 재단 이사장 김판석 선생으로부터 금일에 이르기까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여 국민대학이 오늘의 영광을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생각건대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항시 대학기준령 미달이라는 푸대접에 설움을 받아야만 했던 옛날을 청산하고 지성의 전당이 될 이 건물이 착공되었던 날은 참으로 꿈같은 현실이었음을 말씀드림에 그 간 열심히 일하며 지켜온 보람을 이제는 하느님이 주신 천직으로 국민대학과 나는 마치 바다와 고기 같은 감마저 듭니다. 또한 내가 일하고 지켜온 교정을 떠난 많은 졸업생들이 거리에서, 직장에서 반겨주며 국민대학의 발전상을 이야기할 때 한없이 기쁜 마음 금치 못함을 말씀드립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더욱더 국민대학을 아끼고 맡은 바 소임에 충실할 것을 다짐합니다.

이제 대국민대학으로서 발전, 종합으로서의 교지관계와 재단 측의 그 세밀한 청사진은 내 생애 최고의 행복감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가 국민대학을 아끼듯 나를 아껴주시는 학교당국과 재학생 여러분에게 계속적인 지도와 편달을 바라며 간단히 그치기로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일부 / ≪국민대학보≫ 1968-09-09

사료 사진

최일부
최일부출처 https://kmuhistory.kookmin.ac.kr/history/1959_1970/view
원문 보기 — 이 서술의 근거

현행 사이버역사관 원문: https://kmuhistory.kookmin.ac.kr/history/1959_1970/view

사료 사진 크게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