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 80장면 031
대학 생활의 또 하나의 공간 동아리
요약
신입생들의 웃음소리와 호기심 어린 눈빛에서 캠퍼스의 봄이 왔음을 일러준다. 대학생이 된다는 것은 지금까지 타율성이 많았던 형태의 생활에서 벗어나 보다 자율적인 삶의 시작을 의미한다.
신입생들의 웃음소리와 호기심 어린 눈빛에서 캠퍼스의 봄이 왔음을 일러준다. 대학생이 된다는 것은 지금까지 타율성이 많았던 형태의 생활에서 벗어나 보다 자율적인 삶의 시작을 의미한다. 특히 대학 동아리는 학생들 스스로의 참여로만 운영되는 모임이다. 때문에 학생들의 적극적인 활동이 없으면 그 동아리는 없어지고 마는 것이 생리이다. 학기 초에 각 동아리가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며 신입생들을 영입하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우리 학교에 동아리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중반 경이다. 주로 학술·영어학습·문학·체육 관련 동아리가 만들어져 의욕적인 출발을 보였지만, 운영 미숙과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해 한 두 해 운영되다가 없어지고 말았다.
우리 학교의 동아리가 본격적인 궤도에 오른 것은 1970년대에 들어서다. 당시는 창성동 시대를 마감하고 정릉시대를 개막한 시기여서 학생 활동이 어느 때보다 활발하였다. 1971년 10개로 시작한 동아리가 1979년에 가서는 27개로 늘어나, 현재 우리 학교에 등록된 65개의 동아리가 가운데 41%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 이를 보여준다. 더욱이 1978년 학생회관이 준공과 더불어 각 동아리의 활동공간이 마련되었던 것도 동아리가 활성화하는데 일조했을 것이다.
1980년대에 들어서는 종교와 체육활동과 관련된 동아리가 강세를 보였다. 학생들의 다양한 요구와 사회적인 분위기에 발맞춘 것이다. 1982년 프로야구가 탄생하면서 대학가에도 야구 바람이 일면서 아마 야구반이 만들어진 것이 그러한 경우이다. 그 당시 주목되는 동아리로는 명운다회를 꼽을 수 있다. 1980년 12월 한규설 대감댁을 종로에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와 민속관을 개관한 다음해에 민속관내에 명운다회가 조직되어 차문화를 선도해 나간 점이다.
1990년대 들어서 다양한 동아리가 만들어졌지만, 예전만 못하여 9개에 그치고 말았다. 이러한 경향은 2000년대에도 이어지고 있다. 2000·2001년에 4개가 만들어졌지만, 2002·2003년도에는 새로운 동아리가 하나도 조직되지 못하였다. 양적인 팽창이 반드시 질적인 성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급변하는 사회에서 학생들의 다양한 요구를 받아들일 수 있는 다양한 동아리가 조직되어 학생들의 선택의 폭을 넓혀주어야 할 것이다.
또한 기존 동아리는 과거를 답습하는 차원에서 머물지 말고 새롭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동아리는 자기의 소질을 살리는 계기가 될 뿐만 아니라 비전공 선후배들과 많은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는 공간이다. 동아리 활동이 학업 생활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그런 이유일 것이다. 새내기들의 많은 관심과 열정이 동아리에서 살아 숨쉬길 기대해본다.
이계형(박물관 특임교수) / ≪국민대신문≫ 2004-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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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사이버역사관 원문: https://kmuhistory.kookmin.ac.kr/history/1971_1980/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