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 80장면 037
해공선생 동상제막의 의의
요약
지난 7월 18일 서기(瑞氣)어린 북악(北岳)캠퍼스의 본관 좌측에 본교 창립자이며 위대한 정치가였던 고(故) 해공(海公) 신익희(申翼熙) 선생의 동상이 제막되었다.
지난 7월 18일 서기(瑞氣)어린 북악(北岳)캠퍼스의 본관 좌측에 본교 창립자이며 위대한 정치가였던 고(故) 해공(海公) 신익희(申翼熙) 선생의 동상이 제막되었다.
해공(海公)선생의 동상건립은 그동안 전 북악인의 숙원사업있던 바 늦은 감이 있으나 이 숙원이 이루어진 지금 고인의 업적(業績)과 유업(遺業)을 음미해보면서 앞으로의 좌표를 설정해 본다는 것도 중요하리라.
해공(海公)선생이 일본 제국주의(帝國主義) 통치하에서 후진 양성을 위한 교육으로 그리고 국권(國權) 회복을 위한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하셨다는 것은 부인할 필요성이 없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상해임시정부(上海臨時政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민주조국(民主肇國)건설을 위한 기초를 다졌으며 해방 후에는 이땅에 민주주의 정착을 위하여 노력을 경주하셨음는 그의 위대한 정치적 업적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해공(海公)선생의 진면모는 그의 육영정신(育英精神)에서 찾아 볼 수 있겠다. 1946년 정치적 ㆍ 사회적 혼란의 와중에서도 역사를 계승하고 움직일 젊은 주역(主役)들에게 대학교육의 필요성을 깊게 느껴 해방 후 최초의 사립대학인 본교를 창립(創立)했다.
국민대학 설립 취지문에서 해공선생은 민생의 안정, 국력배양 등 제령역(諸領域)에 있어서 어느 것 하나 시급치 않은 것이 없으나, 특히 육영사업(育英事業)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건전한 정신(精神)과 이상(理想)을 배양하고 전문지식을 습득하여 국민대중(國民大衆)의 지도자(指導者)가 될 소질과 국가에 봉사할 수 있는 인재의 육성이 역사의 시행착오를 극복할 수 있는 길임을 깊게 동찰(洞察)하였음을 우리는 느낄 수 있다.
해공(海公)선생의 육영이념(育英理念)은 개인의 성격을 통하여 사회생활에 이념과 양식(樣式)을 변혁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점에서 사회력이 되는 동시에 사회진보(社會進步)의 원동력이 될 것이며 심오한 국가적 관념(觀念)밑에서 국민의 생활력을 함양하고 국민의 문화를 향상 발전시킴으로써 국가의 비기(丕基)를 견고케 하는 대업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더 나아가 대학교육의 보편화(普遍化) ㆍ 대중화(大衆化)를 통하여 재능(才能)있는 젊은이들에게 교육기회를 균등히 부여해야 한다는 해공선생의 육영자세(育英姿勢)에서 그의 평등사상을 느낄 수 있겠다.
급속한 변화속에서 미래의 불확실성이 증대(增大)되고 있는 기술혁명시대에는 인간가치구현(人間價値具現)을 위해서 미래에 대한 부단한 대비가 필요하다. 때문에 대학교육은 그 어느때보다 더 중요하게 되었다.
이러한 시점에서 대학교육의 인간화(人間化) ㆍ 전문화(專門化) ㆍ 대중화(大衆化)에 기반한 교육이념과 교육기회 균등을 통한 평등한 사회건설, 그리고 어려운 조건하에서도 민주주의(民主主義) 가치구현(價値具現)의의 당위성(當爲性)을 갈파한 해공선생의 이념과 업적은 국민대 가족의 귀감이 될 것이며 동상 건립의 의의도 여기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사설 / ≪국민대학보≫ 1983-08-22
사료 사진
원문 보기 — 이 서술의 근거
현행 사이버역사관 원문: https://kmuhistory.kookmin.ac.kr/history/1981_1992/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