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 80장면 057
학교 정문에서 출발하는 정릉투어 [문화마당]국민인 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정릉투어!
요약
정릉? 정릉!
정릉? 정릉!
국민인이라면 ‘정릉’이라는 이름이 익숙하다. 우리학교가 정릉동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릉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정릉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정릉은 길을 지나가던 태조 이성계가 한 여인에게 물 한잔 얻어마실수 있겠냐고 물어보자 여인이 물에 버드나무 잎을 띄워주었다는 일화로 유명한 조선 태조의 두 번째 부인 강(康)씨를 모신 능(陵)이다. 강씨는 조선의 개국과 함께 현비로 책봉되었다가 1396년(태조5년) 죽었다.
태조 당시 정릉은 도성 안(현재 중구 정동의 영국 대사관)에 있었다. 하지만 그 아들 태종 이방원은 즉위 후 아버지 태조가 애지중지하는 정릉을 못마땅하게 여겨 봉분을 파괴하고 도성 밖 양주군, 현재의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동 산 87-16번지에 있는 이 곳으로 무덤을 옮겼다. 뿐만 아니라 태종은 원래 정릉의 정자각을 헐고, 봉분을 완전히 깎아 무덤의 흔적을 없애도록 명했다. 그것도 모자라 1410년 광통교가 홍수에 무너지자 정릉의 병풍석을 광통교 복구에 사용하게 하여 온 백성이 이것을 밟고 지나가도록 했다고 한다.
정릉투어
정릉으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먼저 학교 정문에서 길음역 방면으로 가는 153, 1213, 7211 버스중 하나를 타고 세 정거장을 지나 정릉2동 주민센터에서 하차한다. 하차 후 정면으로 보이는 골목길을 따라 10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아파트와 주택들 사이로 정릉의 정문이 보이기 시작한다.
정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눈에 띈다. 또 눈앞으로 펼쳐진 울창한 소나무 숲과 탁트인 공터가 시원함을 느끼게 한다. 길을 따라 걸어가다 보면 신성한 지역임을 알리는 홍살문이 서있고 왼편으로는 제사 의식을 진행하는 정자각이 있다. 정자각 뒤편으로 언덕이 펼쳐져 있는데 그 언덕의 꼭대기에 바로 능이 있다.
일반 왕릉의 공간이 직선으로 이루어진 것과 달리 정릉은 자연 지형에 맞추어 이루어져 있다. 진입로와 중심 영역인 능이 일직선이 아니라 중간 지점에서 왼쪽으로 꺾여있어 일반적인 능들보다 더 자유롭게 느껴진다. 걷는 방향에 따라 눈앞에서 새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능과 여러 가지 전통 건물들 외에도 정릉에는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들이 많기 때문에 주민들, 학생들, 연인들은 저마다 삼삼오오 모여 돗자리를 펴고 도시락을 먹으며 이야기 꽃을 피운다. 국민인이라면 한번쯤, 정릉투어!
청수장? 청수장!
이 건물은 1910년대에 세워진 옛 '청수장'을 리모델링한 것이다. '청수장'은 일제강점기 일본인의 별장으로 이용되어 오다가 1945년 해방이 되자 민간인이 인수하여 사용했다. 그러던 중 6.25가 발발하자 특수부대 훈련을 위한 강의실 및 숙소로 쓰이기도 한 역사적인 건물이다. 그러다가 전쟁이 끝난 후 요정 '청수장'으로 다시 한번 탈바꿈했는데 이는 정비석 소설 '자유부인'의 무대로 등장함으로써 세인의 눈길을 끌기도 하였다.
그후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변모를 거듭하다가 1974년 이후 일반 음식점 및 여관으로 바뀌어 운영하던 중 1983년에 북한산이 국립공원 제15호로 지정되면서 '청수장'도 국립공원 지역으로 편입되었다. 1998년에 이 건물은 역사성과 문화적 가치를 인정하여 국가에서 취득하였고 2000년에 건물의 외형을 최대한 보존하는 방식으로 개축하여 2001년 6월 30일 지상 2층 규모의 북한산 국립공원 정릉 탐방 안내소로 문을 열었다.
현재 청수장은 옛 청수장 건물 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대를 모두 청수장이라고 부른다. 옛 청수장 건물에서는 자연체험 프로그램, 산행 프로그램, 숲 해설 프로그램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청수장투어
정릉과 마찬가지로 청수장도 학교 앞에서 버스를 타면 한번에 갈 수 있다. 110A를 타면 15분 내에 청수장 입구까지 도착한다. 청수장 입구에는 버스정류소 종점이 있고 길의 양쪽으로 갈증난 등산객들을 유혹하는 막걸리 집들이 많다.
길을 따라 5분 정도 걸어 올라가다 보면 왼편으로는 맑은 계곡물이 흐르고 앞쪽으로는 일본식으로 지어진 목조건물인 ‘청수장’이 보인다. 예전에 이곳은 계곡에 들어가 물놀이를 하고 가족들과 함께 식사도 할 수 있는 ‘정릉 유원지’였다 하지만 지금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돼 있기 때문에 취사는 불가능 하다. 하지만 상쾌한 공기를 느끼며 산행을 즐기거나 인근 음식점에서 가볍게 막걸리를 한잔 마시기에는 더할나위 없이 좋은 장소이다. 또 옛 청수장 건물을 둘러보면서 100년도 더 된 일본식 건물을 감상하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국민인이라면 한번쯤, 청수장투어!
삼봉정사! & 삼봉정사투어
삼봉정사는 우리학교 성곡도서관 오른편으로 나있는 길을 따라 오분 정도만 걸어 올라가면 찾아볼 수 있는 사찰이다. 삼봉정사는 학교와 맞닿아 있는 북한산의 족두리봉, 향로봉, 비봉의 바로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삼봉정사라는 이름이 붙었다. 삼봉정사의 실제 역사는 100년도 넘게 이어져 내려오지만 공식적으로 서울시에 등재된 시기는 1962년이다.
여러 불상들과 대웅전의 모습은 다른 사찰들과 다르지 않지만 삼봉정사만의 다양한 불교 문화를 뽐내고 있다. 아기자기한 동자승 불상도 있고 무서운 장군 모습을 한 불상도 볼 수 있었다.
삼봉정사를 구경하던 중 주지스님을 만났다. 주지스님은 학생들이 더 자주 삼봉정사를 방문해 주었으면 하는 눈치였다. 또 종교를 떠나 문화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며 학생들이 다양한 문화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삼봉정사에 가서 주지스님과 차 한잔 마시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어 보는 것은 어떨까. 국민인이라면 한번쯤, 삼봉정사투어!
시간이 멈춘 그곳, 정릉시장
시장 골목 안으로 마을 버스와 차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모습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시장의 모습과는 조금 달랐다. 두부집과 야채가게, 과일가게, 고깃간, 수선집, 생선가게 사이사이 골목에는 가정집들이 빼곡이 들어차 있어 눈앞에 펼쳐진 정릉시장은 시장이기 전에 삶의 터전 그 자체로 보였다. 형형색색 파라솔 아래 야채들이 저녁 찬거리를 사러 온 할머니와 아주머니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높은 빌딩과 아파트 숲으로 대변되는 개발도시 서울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다고 삼청동이나 북촌 등 전통적인 한옥 마을의 느낌도 아니었다. 뭔가 더 사람사는 냄새가 난다고나 할까. 현대와 과거, 상점과 주택이 함께 공존하는 시장 골목 골목을 돌아다니다보면 영화「건축학개론」속 90년대 감성이 느껴지는 듯 하다. 시장을 가로질러 흐르는 개천에는 한가롭게 청둥오리가 헤엄을 치고 있었다. 내천이 있어서 그런지 정릉시장은 시장의 분주함보다는 여유가 느껴졌다. 따뜻한 봄날에 찾은 정릉 시장의 풍경은 서울이 아닌 듯한, 시간이 멈춘듯한 정취가 이색적인 시장이었다. 영화 속 납득이(조정석)와 승민이(이제훈)가 당장이라도 시장 한 귀퉁이에 앉아 밤새 사랑에 대한 고민을 나눌 것 같았다.
성북구 문화 인프라의 핵심, 아리랑시네센터
서울의 영화관은 대형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대부분이다. 그에 반해 아리랑시네센터는 규모가 작은 소박한 영화관의 모습이다. 독립영화 전용관을 포함하여 3개의 상영관이 고작이다. 관람석도 상대적으로 적다. 1관이 221석, 2관이 173석, 3관이 125석으로 3개관을 모두 합쳐도 대형 멀티플렉스 영화관 한관 정도의 좌석 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리랑시네센터가 성북구민들의 사랑을 받는 건 아주 특별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아리랑시네센터가 위치하고 있는 아리랑고개는 춘사 나운규 선생의 영화「아리랑」의 배경이자 한국 영화의 ‘성지’이며, 민족의 얼 아리랑에 대한 의미를 다시 새겨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영화 「아리랑」의 의미는 특별하다. 감독과 주연을 맡은 나운규 선생은 한국 영화의 선구자이자 독립운동가로 「아리랑」에는 일제강점기 당시 우리 민족의 애잔한 정서가 그대로 녹아 있다. 한편의 영화를 넘어 우리 민족의 역사를 담고 있는 셈이다. 이를 기념해 지난 2001년 아리랑 기념관이 문을 열었고, 지난 2004년 개봉관을 갖춘 아리랑시네센터로 재개관했다. 영화를 테마로 한 다채로운 시설이 있어 단순한 영화관이 아닌 복합 문화 공간의 성격을 띠고 있다.
아리랑 고개의 고갯마루에 들어선 아리랑시네센터는 영화 상영관은 물론 영화갤러리와 미디어센터, 세미나실 등으로 구성된 복합문화시설로 지하 2층과 지상 4층을 합하여 6층 규모다. 지하 1층과 2층은 영화상영관과 편의시설이 자리한다. 1층은 영화 갤러리, 2층은 독립영화 전용관과 나운규 기념 벽 등이 있다. 4층은 아리랑미디어센터가 자리한다. 현재는 4편의 개봉영화와 2편의 독립영화가 상영되고 있으며 티켓 가격은 7천원이다.
상영관을 갖춘 극장이지만 아리랑시네센터를 ‘영화만 보는 곳’이라고 생각한다면 아직 절반밖에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아리랑시네센터에서는 우리나라 영화의 역사를 두루 살펴볼 수있다. 우선 1층에 있는 영화 갤러리부터 둘러보면, 갤러리라고 해서 그림 만을 전시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오히려 영화 박물관에 가깝다. 갤러리에는 우리나라 영화인의 사진이나 세계적인 영화제와 국내 영화제의 트로피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물론 춘사 나운규선생을 기린 춘사영화제의 트로피나 상패도 볼 수 있다.
또한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장·단편영화 제작프로그램, 아마추어 사진작가 과정, UCC 다큐영상 제작과정, 포토샵·일러스트레이트 과정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준비되어 있다.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직접 영화를 만들고 편집하기 위한 장비와 시설도 대여할 수 있다. 프로그램은 한달에 5만원 정도이며 장비와 시설은 하루에 4만원 정도이다. 성북구 도시관리공단에서 운영하기 때문에 사설 업체의 3분의 1가격으로 프로그램 수강과 장비 및 시설 대여가 가능하다.
※ 춘사 나운규 : 한국 영화계의 선구자이자 독립투사로 30년 남짓한 짧은 생애를 조국과 영화에 바친 위인. 1926년 자신의 원작인 「아리랑」을 감독 및 주연한 것을 비롯하여 1936년 마지막 작품 「오몽녀」까지 15편이 넘는 영화를 만들었다. 특히 1936년 「아리랑」의 3편을 제작하면서 녹음장치를 적용시켜 한국영화가 유성영화시대로 전환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문화마당 / ≪국민대신문≫ 2011-09-14
사료 사진
원문 보기 — 이 서술의 근거
현행 사이버역사관 원문: https://kmuhistory.kookmin.ac.kr/history/2004_now/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