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 80장면 005
창학 초기 ‘민족론’ 강좌와 정체성
요약
8ㆍ15해방으로 일제의 압제에서는 벗어났지만, 미군정체제 아래 우리는 진정한 주권을 누릴 수 없었다. 때문에 해방정국에서 자주적 국민국가를 건설하는 일은 무엇보다 절실한 과제였다.
8ㆍ15해방으로 일제의 압제에서는 벗어났지만, 미군정체제 아래 우리는 진정한 주권을 누릴 수 없었다. 때문에 해방정국에서 자주적 국민국가를 건설하는 일은 무엇보다 절실한 과제였다. 임시정부의 주석단이 전면에 나서 추진했던 국민대학의 건학은 그와 같은 시대적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본교의 '다른 역사'는 건학 과정 뿐 아니라 교과 과정에도 반영되고 있었다. 당시 국내 대학에서 본교가 유일하게 개설한 '민족론' 강좌가 그것이다. 1학년 필수과목으로 지정되었던 이 강좌는 1학기 2학점씩 1년 4학점으로 개설되었다.
수업의 내용은 학장 신익희 선생이 직접 독립운동의 전개 과정에서 경험하거나 느낀 점을 강의하고, 학생들과 독립운동과 민족문제를 토론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민족론'이라는 강좌명과는 달리, 실질적으로는 독립운동사 강의였던 셈이다. '민족대학'에서 민족의식을 함양하기 위한 이 강좌는 마치 기독교 학교에서 성경을 의무적으로 교육시키는 것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따라서 학생들은 이 강좌를 통해 자연스럽게 독립운동 정신을 계승한 민족의식을 함양해 갔고, 본교에 대한 남다른 자긍심으로 충만하였다.
그러나 '민족론' 강좌는 해공 선생의 정계 진출과, 또 재정난에 봉착한 본교가 재단분규로 혼란을 겪으면서 중단되고 말았다. 아전인수격인 안목인지는 몰라도, '민족론' 강좌는 1980년대 초반 국사학과에서 '독립운동사' 강좌를 전공과목으로 지정하면서 다른 형태로 부활하였다. 이때의 '독립운동사' 강좌 개설은 국내에서 선구적인 것이었다. 독립운동의 정신을 계승한 본교에서 '독립운동사' 강좌를 처음 개설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기도 했지만, 이를 통해 독립운동사의 흐름에서 국민대학의 역사성이 재조명될 수 있었다.
그리고 21세기를 맞이하여 정체성 정립을 위한 노력은 2000년에 '해방정국과 국민대학'이라는 교양과목을 개설하는 수준으로 발전되었다. 국내 대학에서 자교사(自校史)를 정식 교과에 개설한 것도 본교가 유일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같은 자기 역사에 대한 자긍심은 전통을 계승하면서 미래를 열어가려는 본교의 발전에 귀중한 좌표가 될 것이다.
장석흥(국사학과) 교수 / ≪국민대학보≫ 2002-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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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사이버역사관 원문: https://kmuhistory.kookmin.ac.kr/history/1946_1958/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