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 80장면 020
<국민대학과 나>, 수위실 근무 최일부 씨
요약
회고하여 보건데 내가 국민대학을 지켜오고 아껴 온지도 벌써 17여년이 흘러갔습니다. 흐르는 세월 따라 눈이오나 비가 오나 나는 수위실에서 일하여왔습니다.
회고하여 보건데 내가 국민대학을 지켜오고 아껴 온지도 벌써 17여년이 흘러갔습니다. 흐르는 세월 따라 눈이오나 비가 오나 나는 수위실에서 일하여왔습니다. 또 흘러간 세월 속에는 교직원도 바뀌었고 수많은 학생들도 배워 나갔습니다. 참으로 지난 일을 회고하건데 꿈만 같습니다.
내가 학보사의 원고청탁을 받고 <국민대학과 나>와 관하여 몇 자 적어 봅니다. 당시 1950년 9·28수복으로 어수선한 수도 서울과 함께 본 대학도 그때 그저 초라한 수난을 면치 못한 체 개강을 기다리고 있을 무렵 김진옥 씨(당시 서무과 근무) 소개로 고 해공 신익희 학장 면접 하에 본 대학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당시는 강의실 6개 뿐 곳곳에 흩어지고 무질서한 환경을 나는 열심히 힘을 다하여 일했습니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학교 측과 당시 재단 이사장 정병조 씨와의 근 4~5년간의 분규로 학생들이 앞장서서 학교를 지켜왔습니다. 회상할 때 당시의 고심은 지금도 잊어지지 않습니다. 재단 측과의 분규가 끝났을 때 본 대학은 학장님으로 계셨던 고 해공 신익희 선생의 대통령 선거 유세로 인한 급서의 소식으로 또 하나의 슬픔에 잠기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으면 당시 재학생 일동은 영구차를 끌고 국민의 애도 속에 서울 장안을 묵묵히 지날 때는 국민대학은 마치 부모님 없는 천애고아 같은 느낌에 눈물이 앞을 가렸으며 언제 국민대학도 타 대학과 같이 발전할 수 있을까? 가슴깊이 맺힌 소망이었습니다.
그 후 현 재단 이사장 김판석 선생으로부터 금일에 이르기까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여 국민대학이 오늘의 영광을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생각건대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항시 대학기준령 미달이라는 푸대접에 설움을 받아야만 했던 옛날을 청산하고 지성의 전당이 될 이 건물이 착공되었던 날은 참으로 꿈같은 현실이었음을 말씀드림에 그 간 열심히 일하며 지켜온 보람을 이제는 하느님이 주신 천직으로 국민대학과 나는 마치 바다와 고기 같은 감마저 듭니다. 또한 내가 일하고 지켜온 교정을 떠난 많은 졸업생들이 거리에서, 직장에서 반겨주며 국민대학의 발전상을 이야기할 때 한없이 기쁜 마음 금치 못함을 말씀드립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더욱더 국민대학을 아끼고 맡은 바 소임에 충실할 것을 다짐합니다.
이제 대국민대학으로서 발전, 종합으로서의 교지관계와 재단 측의 그 세밀한 청사진은 내 생애 최고의 행복감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가 국민대학을 아끼듯 나를 아껴주시는 학교당국과 재학생 여러분에게 계속적인 지도와 편달을 바라며 간단히 그치기로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일부 / ≪국민대학보≫ 1968-09-09
원문 보기 — 이 서술의 근거
현행 사이버역사관 원문: https://kmuhistory.kookmin.ac.kr/history/1959_1970/view